산 정상부에 난 임도가 '산사태 발원지'

2023-07-24 11:48:41 게재

경북 예천 일대 산사태 현장 6곳 가보니 … "임도실명제 도입, 사고 나면 책임 물어야"

21일 오전 7시 30분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마을 한가운데로 산사태가 밀고내려와 60대 남녀 주민 2명이 실종된 마을이다.

마을 뒤편 산 벌목지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마을을 덮친 감천면 벌방리. 큰 바위들이 집들을 깔아뭉개 2명이 실종됐다.


이른 아침부터 중장비와 수색견이 동원된 실종자 수색작업이 진행중이었다. 지름 3미터 이상의 큰 바위들이 떠내려왔고 그 사이에 주택 잔해 등이 깔려있다. 중장비로 바위를 들어올려 그 아래를 수색하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겨우 복구된 좁은 콘크리트길을 따라 마을 뒤편 과수원으로 올라갔다. 산사태는 마을 뒷산인 주마산(516m) 서쪽 사면 계곡 3곳에서 발생해 Y자로 합류한 뒤 마을을 덮쳤다.

낮은 구름대가 걷힌 후 드론 영상에 산사태 발원지 3곳이 드러났다. 송전탑 2개가 가로지른 계곡 주변은 모두베기벌목 흔적이 뚜렷했다. 벌목지에 나무들이 많이 자란 상태였지만 주변의 울창한 산림에 비해 나무들 키가 작아 색으로도 구별될 정도다.

주마산 산줄기는 북쪽으로 시루봉(607m)을 거쳐 영주시 봉현면 경계 묘적재(1019m)에서 백두대간을 만난다. 좁고 높은 산줄기 안에 갇힌 비구름대가 북쪽 힛둣재에 가로막혀 많은 비를 뿌릴 수밖에 없는 지형 조건이다.

산사태가 마을 중앙도로를 관통한 효자면 백석리. 토석류가 가옥들을 덮치면서 5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산사태 토석류가 마을 정중앙 관통 = 벌방리에서 석관천을 건너면 진평리다. 이 마을에서도 70대 부부가 실종됐다. 진평리 마을 뒤로 올라가니 왼쪽으로 벌목지가 보이고 벌목지 안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드론을 높이 띄워 전체 현황을 보니 모두 5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한줄기로 모인 뒤 마을을 덮쳤다. 5곳 모두 최근에 벌목한 흔적이 뚜렷했다. 오른쪽 산사태 시작지점 2곳은 '임도'였다. 부용봉(688m) 정상부를 가로지른 임도가 산사태 발원지였다.

진평리 바로 북쪽에 수한리가 있다. 예천에서 영주로 가는 931번 지방도에서도 산사태가 눈에 띄었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보니 마을 바로 뒷산을 모두베기로 벌목했고 벌목지 인근에 송전탑 2기가 서있다.

벌목지 내부 3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마을 뒤편 과수원을 덮쳤다. 그나마 계단식 과수원이 산사태가 커지는 걸 막았고 마을이 봉긋한 능선부에 자리잡아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산사태 피해를 입은 과수원 주인은 "개인산주와 산림조합이 벌목을 한다는 데 주민들이 막을 수가 없었다"며 "그나마 우리 마을은 사람이 다치지 않고 이 정도 피해에 그친 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수한리 바로 북쪽은 영주시 봉현면이다. 봉현면 옥녀봉 자연휴양림을 지나 남쪽으로 고항치를 넘으면 다시 예천군이다. 고항치 바로 서쪽은 백두대간 묘적재(1019m)다. 도솔봉(1314m) 바로 남쪽 능선이다.

예천군에서 가장 많은 5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효자면 백석리는 백두대간 바로 아래 마을이다. 산사태 토석류가 마을 안길을 관통해 많은 가옥들이 완파됐다. 전쟁중 폭격을 맞은 것 같은 현장에는 주민들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산사태는 백두대간 아래 계곡이 아닌 마을 북쪽 산태골에서 발생했다. 산태골이 시작되는 750m 산꼭대기에는 오래된 헬기장으로 보이는 시설물이 있는데 여기가 산사태 발원지였다.

산태골 하단은 벌채 후 과수원을 조성했고 시멘트 포장도로가 계곡 위까지 연결된 것으로 보였다. 가파른 계곡에 무리한 도로를 냈고, 계곡 상단이 폭우에 무너지면서 산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3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은평면 은산리(탑리)는 마을 뒤편 임도 위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산사태는 Y자형 임도 양쪽에서 규모를 키웠다. 계곡을 가로지른 콘크리트 임도가 폭우에 폭포로 변하면서 아래 계곡이 깊게 패인 상태였다.

◆계곡 가로지른 임도가 폭포로 = 계곡이 패이면서 아름드리 나무들이 뽑혀 떠내려갔고 이 나무들이 서로 뒤엉켜 댐 역할을 하다가 터지는 바람에 피해가 커진 것으로 보였다.

산사태로 흘러내린 토석류와 나무들이 낮은 경사인 석관천 합류부까지 덮쳤다.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된 은평면 금곡리는 예천양수발전소 상부댐 아래 마을이다. 상부댐에서 북동쪽으로 능선을 따라 긴 임도가 개설돼있는데, 그 아래 계곡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취재에 동행한 이수곤(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 박사는 "마을 위를 지나가는 임도는 큰비가 와도 산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시공을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며 "임도 실명제를 도입해 사고 발생시 반드시 시공사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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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 글 사진 남준기 기자 namu@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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