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에서 지적한 '위기의 한국' | ① 부의 대물림

미성년 자녀·손주에 부동산·주식 증여 … '양극화' 악순환

2023-10-16 12:29:09 게재

0세부터 배당·임대료 수입 … 교육·취업 양극화로

"출발선부터 다르다" … '그들만의 리그' 고착화

"부모 재력·권력, 입시결과에 영향 … 공정 개선"

21대 국회 마지막 국감에서 국회의원들은 줄곧 제기해 왔던 '부의 양극화'를 다시 꺼내들었다. '부의 대물림'이 자녀와 손자녀까지 이어지면서 '그들만의 리그'를 고착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미 달랐던 출발선의 간격이 더 벌어지고 계층사다리가 무너져 내린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전철을 이어 밟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강준현 의원(더불어민주당·세종특별자치시을)이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2022년까지 5년 동안 미성년자에 대한 증여는 모두 6만8948건으로 금액으로는 7조8933억원에 달했다. 증여 건수는 2018년 9708건에서 2022년 1만9740건으로 늘었고 증여 재산은 1조2579억원에서 2조468억원으로 2조원대로 올라섰다.

증여 재산을 살펴보면 부동산이 2조8232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금융자산 2조6938억원, 유가증권 1조8588억원, 기타 자산 5173억원 순이었다.

성년이 된 20·30대 청년에게 최근 5년간 증여된 금액은 73조원에 달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한병도 의원(더불어민주당·전북 익산을)은 국세청 자료를 토대로 2018~2022년까지 20·30대 청년에 대한 증여재산 총액으로 환산하면 73조4082억원, 건수는 21만6647건이라고 밝혔다. 2018년 5만5417건, 10조5802억원에서 지난해에는 9만15건, 17조7950억원으로 늘었다.

자녀 외에도 손자녀에게 직접 증여하는 '세대 생략 증여'도 적지 않다.

민홍철 의원(더불어민주당·경남 김해)이 '미성년자 세대생략 증여세 결정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18~2022년까지 미성년자가 세대생략 증여를 통해 물려받은 건물·토지는 모두 1만451건(건물 5058건, 토지 5393건)으로 금액으로 환산하면 1조7408억원(건물 8966억원, 토지 8842억원)이었다. 연도별로 2018년 1863건(3300억원), 2019년 2099건(3490억원), 2020년 1849건(2590억원), 2021년 2648건(4447억원), 2022년 1992건(3580억 원)이었다.

이에 따라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건물주'가 돼 있었고 고액 연봉자가 돼 있었다.

이수진 의원(더불어민주당·서울 동작을)이 확보한 국민건강보험 공단의 '만 18세 이하 미성년자 직장가입자 전체 현황자료'를 보면 지난해 18세 미만 직장가입자 수는 모두 2만1596명으로 이 중 390명이 사업장 대표로 등록돼 있다.

미성년자 사업장대표를 업종별로 보면 부동산 임대업이 지난 2018년보다 77명이 늘어난 344명(88.2%)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미성년자들이 주식 배당과 임대료로 벌어들인 소득만 지난 2018~2021년까지 4년 동안 1조4000억원이었다. 배당소득을 받은 미성년자는 모두 9019명이었고 이들의 소득은 약 1조2억원이었다. 임대소득을 신고한 미성년자 수는 2018년 2684명에서 2021년에는 3136명까지 늘어났다. 미성년자의 부동산 임대소득 신고 금액은 한 해 500억원을 넘겼다. 최근 4년간 2212억1500만원을 벌어들였다.

부유층은 교육 투자 비중을 높여갔다. 이는 교육 양극화로 이어지면서 향후 부의 추가 축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취업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부→교육→취업→부'로 이어지는 '부의 양극화 순환도' 구도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국회 교육위 문정복 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 시흥갑)이 한국장학장학재단으로부터 받은 '국가장학금 신청자 자료'에 따르면 올해 1학기 의대·서울대·고려대·연세대에서 국가장학금을 신청한 학생 중 소득이 높아 탈락한 학생이 55.19%였다. 전국 39개교 의대생 7347명 중 소득 9·10구간에 해당돼 국가장학금을 받지 못한 학생은 4154명으로 전체의 56.54%로 나타났다. 서울대는 모두 8922명이 신청했는데 이 중 5063명(56.74%)이 고소득층으로 분류됐다. 고려대와 연세대에는 각각 7200명(58.6%), 4582명(48.26%)의 탈락자가 나왔다.

통계청의 소득 5분위별 소비지출 구성비를 보면 지난 1분기 하위 20%인 1분위는 교육소비에 2.6%를 지출했다. 상위 20%인 5분위는 11.4%를 투입했다. 소비지출 규모가 5분위로 갈수록 증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교육에 투자하는 재원은 더욱 크게 차이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오태희 한국은행 과장과 이장연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의 흙수저 디스카운트 효과' 논문을 통해 부모의 금융자산이 적으면 자녀의 일자리·소득 수준도 떨어졌다는 실증자료를 공개하면서 "금융자산을 적게 보유한 부모의 자녀들이 양질의 일자리와 높은 임금 상승 경로를 갖기 어려운 '흙수저 디스카운트' 효과가 실재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흙수저 디스카운트는 사회계층 세습화를 초래하기 때문에 정부는 계층 이동 사다리를 복원하기 위해 청년층 구직자의 신용제약 완화 등을 통해 노동시장 진입 초기 단계에서 발생하는 기회의 불평등을 줄이는 정책적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문 의원은 "부모의 재력과 권력이 입시결과에 영향을 미치고 부의 대물림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며 "교육이 다시 계층 이동의 희망사다리가 될 수 있도록 보다 공정하게 개선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 의원은 "부의 대물림이 심화됨에 따라 청년세대가 사회생활의 출발선에서부터 극심한 좌절감에 빠지고 있다"고 지적하며 "국가의 정책 지원은 부모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결혼을 준비하는 청년들을 중심으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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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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