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에서 지적한 '위기의 한국' | ② 다가오는 빚 잔치의 종말

취약차주 127만명 연체율 급등 … "약한 고리부터 무너진다"

2023-10-17 11:26:48 게재

가계대출 2000조 육박 … GDP 100% 돌파 '위기 경고'

전세사기·채무 불이행 속출은 전조 … 고금리 장기화

'국가는 부자, 국민은 가난' … IMF "취약계층 타격"

'폭탄 돌리기'처럼 국가 채무를 낮게 관리하면서 기업과 가계 대출을 늘리는 정책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2030세대나 저소득층, 영세자영업자 등 취약차주 중심으로 대출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고금리의 장기화가 이어지면서 이를 견디지 못한 취약차주들의 위기가 문턱까지 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잇달아 터지는 '전세사기'는 그 전조로 읽힌다.

1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진선미 의원(더불어민주당·서울 강동구갑)은 한국은행 자료를 토대로 취약차주의 연체율이 2021년 1분기에 6.2%에서 올 2분기엔 8.6%로 껑충 뛰어올랐다고 밝혔다. 취약차주는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소득 하위 30%) 또는 저신용(신용점수 664점 이하) 상태인 대출자다. 올 2분기 말 현재 전체 가계대출자 1978만명 가운데 취약차주 비중은 6.4%(127만명)정도로 집계됐다. 1분기(6.3%)보다 0.1%p 늘어 2020년 4분기(6.4%) 이후 2년 반 만에 가장 컸다.

연령별로 보면 같은 기간에 30세 이하의 젊은 층이 5.3%에서 8.4%로 치솟았고 40대와 50대는 7.3%, 7.1%에서 9.3%, 8.9%로 뛰었다. 60세이상도 4.1%에서 7.2%로 급등했다.

취약차주들의 부실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해결, 희망을 담아 |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주최로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전세사기 피해자 집중 집회' 참가자들이 전세사기·깡통전세 특별법 개정을 촉구하며 희망을 담은 의미로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상징의식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약한 고리부터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고금리에 따라 전세사기가 곳곳애서 터지고 있다. 서울 강서구를 비롯해 수원, 대전 등 전국에서 전세사기 피해사례가 드러나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봉민 의원(국민의힘·부산수영구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전세 사기 사건 피해자는 총 4481명, 피해액은 5105억원이었다. 금융채무 불이행자는 2021년말 115만3000명에서 120만4000명으로 늘어났다.

◆너무 빨리 늘어나는 가계부채 = 가계대출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한국은행의 '2023년 2분기 가계신용(잠정)' 통계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862조8000억원으로 1분기 말보다 0.5%(9조5000억원) 늘었다. 가계신용은 가계가 은행 보험사 대부업체 공적 금융기관 등에서 받은 대출에 결제 전 카드 사용 금액(판매신용)까지 더한 것이다.

국제금융협회(IIF)가 매분기 발표하는 글로벌 부채 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경제규모(명목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23년 2분기말 기준 101.7%로 스위스 126.1%, 호주 109.9%, 캐나다 103.1%에 이어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높다. 이는 글로벌 평균 61.9%에 비해서는 40%p 이상 높은 수치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2022년말 현재 한국의 명목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5.0%로 주요 43개국 중 세 번째로 높았다. 주요국인 영국(83.5%), 미국(74.4%), 일본(68.2%)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한국은행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80%를 넘으면 성장률이 낮아지고 경기침체 발생 확률도 높아지는 것"며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5%를 넘어선 상황이어서 가계부채 관리가 특히 중요하다"고 했다.

◆추운 겨울이 시작됐다 = 우리나라 국가부채 비율은 상대적으로 건전한 반면 가계대출은 유례없이 빠르게 증가해 우려를 낳고 있다.

'부유한 국가, 가난한 국민'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크리슈나 스리니바산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국장은 "가계부채 비율이 꽤 높은 수치로, 수치가 조금 내려와야 된다"며 "금리인상 추세에서 특히나 취약계층에 더 큰 타격을 입힐 것"이라고 진단했다.

민주당 경제특보인 홍성국 의원은 "미국의 금리상황을 보면 내년까지도 현재 수준에서 낮추기 어렵고 그렇다면 우리나라 역시 내외금리차가 벌어질 것을 우려해 쉽게 기준금리를 하향조정하기 어렵다"면서 "앞으로 상당기간 현재의 고금리 수준을 유지하면서 버텨내야 하는데 취약차주 중심으로 쉽지 않다"고 했다. 홍 의원은 "영세자영업자와 취약한 가계의 경우 올해 겨울과 내년 봄에는 본격적인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총선 전에 이 문제가 터지지 않도록 정부와 여당이 막으려 하겠지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금융연구원은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최근의 가계대출 위험의 핵심은 금리 상승압력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동시에 대출 증가세가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고금리 장기화가 차주의 채무상환능력과 금융기관의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보다 고정·변동금리 대출 여부와 깊이 관련돼 있다"며 "은행권 가계대출 중 변동금리대출 비중은 2020년 1분기말 65.6%에서 2023년 2분기말 현재 72.0%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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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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