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견회계법인, 상장기업 감사에서 철수

2023-12-27 10:39:53 게재

FT "규제강화에 인력난 겹쳐"

미국 중견 회계법인 다수가 올해 신입사원 부족과 감독기관 규제강화로 상장기업 감사업무를 속속 중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6일(현지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노스다코타에 본사를 둔 상위 20위권 회계법인 '아이드 베일리'는 지난달 5개 지역 은행들에게 제공하던 상장기업 감사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상위 20위권 회계법인 아르마니노 역시 올해 상장사 감사 업무를 종료했다.

이 기업 최고경영자 매트 아르마니노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화되는 규제환경과 변화하는 시장상황 때문에 매출의 2%에 해당하는 감사업무를 포기한다"고 말했다. 아르마니노는 감사를 담당한 암호화폐 거래소 FTX가 파산한 이후 규제당국의 조사를 받은 바 있다.

상위 20위권 회계법인 '클리프톤라슨앨런(CLA)'도 올해 초 은행 고객들에 집중했던 상장기업 감사서비스를 종료했다. CLA의 최고경영자인 젠 리어리는 FT에 "상장기업을 감사하는 데 필요한 투자를 중소규모 비공개기업이나 비영리단체로 돌리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회계법인의 상장기업 감사를 감독하는 미국상장기업회계감독위원회(PCAOB)는 바이든정부 들어 감사기준을 강화하고 감독·검사횟수를 늘리며 회계법인들에 기록적인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PCAOB는 올해 1월부터 지난달 중순까지 30개 이상 회계법인에 총 1185만달러 벌금을 부과했다. 이는 이전 최고기록인 2022년 1120만달러를 넘어서는 수치다.

PCAOB는 지난주 "금리상승으로 인한 혼란을 고려할 때 내년에는 은행에 대한 감사 서비스에 초점을 맞춰 더 많은 감독·검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PCAOB는 또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감사기준을 개정하는 중이다. 공인회계사 직업을 대표하는 미국공인회계사협회(AICPA) 공공회계부문 최고책임자인 수 코피는 "회계법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PCAOB의 감독·검사가 부분적인 이유"라고 말했다.

전세계적으로 약 1600개 회계법인이 PCAOB 감독대상에 등록돼 있다. 올해 5월 기준 258개 회계법인이 미국 상장기업을 감사했다.

회계업계 컨설턴트인 앨런 콜틴은 "기업들이 위험과 보상에 따라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집중할지 결정하는데, PCAOB 감독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회계업계 리스크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PCAOB는 물을 흐리는 회계법인들을 퇴출시키길 원한다. 그들은 그렇게 할 것"이라며 "한편 회계법인들은 엔론 분식회계 이후 파산한 아서 앤더슨처럼 업계를 전멸시킬 수 있는 가장 큰 리스크가 무엇인지 묻고 있다. 회계감사 서비서의 마진은 좋지만 그리 큰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견 회계법인들이 상장기업 감사에서 발을 빼는 또 다른 요인은 인력난이다.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사람의 수가 최소 17년 만에 최저수준으로 낮아지면서 인력난이 악화되고 있다.

이달 8일 미국 댈러스에 본사를 둔 생명공학기업 포르테 바이오사이언스는 새 감사인으로 KPMG를 선정했다.

올해 초 경영지원서비스 기업 씨비즈(CBiz) 산하 회계법인 MHM(상위 20위권)이 이 기업의 상장기업 감사를 중단하면서다. MHM은 "자체적인 자원 제약으로 인해 상장기업 재무보고에 대한 감사 서비스를 더 이상 제공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PCAOB 고문인 샌디 피터스는 "감사인은 적절한 수준의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며 규제당국이 부과하는 높은 기준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투자자들은 이러한 강화된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감사법인이 그같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보호받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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