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엔비디어 저사양칩 외면 움직임

2024-01-08 10:53:21 게재

WSJ "성능 비슷한 화웨이칩 등 자국기업 선호"

중국 주요 기술기업들이 엔비디아의 중국전용 저사양칩을 점차 외면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7일(현지시각) "지난해 10월 미국정부가 엔비디아 고사양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금지한 이후 엔비디아가 이를 우회하기 위해 중국 맞춤용 저사양칩을 신속하게 설계했지만, 중국 클라우드 기업들이 저사양칩 구매에 그다지 열정적이지 않다"고 전했다.

WSJ는 "알리바바·텐센트 등 중국 최대 클라우드 기업들은 지난해 11월부터 엔비디아의 저사양칩 샘플을 시험하고 있다. 이들은 당초 계획과 달리 올해 구매량을 대폭 줄이겠다는 뜻을 엔비디아에 전했다"고 보도했다.

단기적인 이유는 엔비디아의 저사양 프로세서가 중국 반도체기업들의 제품 성능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일부 첨단 반도체 주문을 화웨이 등 자국 기업들에게 내고 있다. 중국 인공지능(AI) 선도기업인 바이두와 바이트댄스(틱톡 모기업)도 화웨이 등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장기적 이유로는 엔비디아가 중국에 반도체를 지속 공급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정부는 대중국 반도체 수출통제 조치를 정기적으로 재검토할 방침이다. 추가적인 조치가 나온다면 엔비디아 칩 성능은 더욱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WSJ는 "중국 기술기업들은 엔비디아 반도체를 덜 사용하는 방향으로 사업전략을 수정하고 있다"며 "엔비디아 입장에선 미국정부의 수출통제와 중국 고객기업들 수요 사이에서 균형점을 잡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수출통제 전 엔비디아의 중국전용 반도체 수주잔액은 수십억달러에 달한다. 중국은 엔비디아 총매출의 20%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 중 하나다.

기술리서치기업 트렌드포스 애널리스트 프랭크 쿵은 "중국 클라우드 기업들은 현재 고사양 AI칩의 80% 정도를 엔비디아에서 공급 받는다. 하지만 향후 5년 동안 50~60%로 줄어들 것"이라며 "미국정부의 반도체 통제가 심화되면 엔비디아 중국 매출은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엔비디아는 중국 기업들을 대체할 구매자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로 인한 단기적인 재정압박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기업 최고재무책임자인 콜레트 크레스는 지난해 "장기적으로 중국에 AI칩을 판매할 수 없게 되면, 세계 최대 시장 중 하나인 중국에서 경쟁하고 선도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엔비디아는 2022년 10월 첫번째 수출통제 이후 미국정부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기준 이하로 칩 성능을 낮춰 중국에 판매했다. 지난해 중국 매출은 10억달러 이상이었다.

지난해 말 미국정부가 2번째 대중국 수출통제 조치를 내놓았을 때, 엔비디아는 중국 구매기업들을 위해 사양을 더 낮춘 새로운 제품군을 개발했다. 이는 올해 초 양산될 계획이다. 엔비디아는 지난달 미국 수출통제 기준을 충족시킨 게이밍용 칩의 저사양 모델인 지포스 RTX4090D를 출시했다.

중국 기업들은 또 H20으로 불리는 엔비디아의 새로운 AI칩 샘플을 테스트중이다. 이 칩은 여러 프로세서들 간 데이터전송의 효율성을 높여준다. 중국 기업들은 H20칩이 중국산보다 우수하다고 평가하지만, 엔비디아의 이전 칩과 동일한 연산력을 내기 위해 보다 많은 칩이 필요하기 때문에 비용증가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중국 화웨이는 엔비디아 빈자리를 채우며 입지를 넓히고 있다. 화웨이는 지난해 주요 중국 인터넷 기업들로부터 최소 5000건의 어센드 910B칩 주문을 받았다. 이 칩은 수출통제 대상인 엔비디아의 고사양 A100칩에 가장 근접한 제품이다.

차이나텔레콤은 지난해 10월 화웨이 칩으로 구동되는 AI서버 3억9000만달러어치를 구매했다. 차이나유니콤은 2022년 최소 2000만달러를 화웨이 반도체 구매에 썼다. 화웨이는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확장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하반기 새로운 첨단 AI칩을 출시할 계획이다.

알리바바 반도체 자회사인 T헤드 역시 '한광(Hanguang)' 브랜드로 새로운 AI프로세서를 개발중이다. 알리바바의 한 중역은 "미국 통제가 향후 더욱 심해질 예정이기에 지금 대안을 찾는 게 낫다"고 말했다.

헤지펀드 인터커넥티드 캐피털 창업자 케빈 쉬는 "미국의 수출통제는 장기적으로 중국의 자체기술 개발을 가속화할 것"이라며 "엔비디아의 수주잔액이 정리되면 엔비디아 중국 사업은 희생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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