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총재, 통화정책보다 구조개혁에 더 관심?

2024-03-13 13:00:03 게재

기준금리 동결, 당분간 인하도 선그어

“최저임금 외국인 예외적용” 문제 제기

“어려움 수반된 구조개혁 필요” 언급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통화정책 전환 등에 대해서는 선을 그으면서도 노동시장 등 구조개혁에 더 관심을 보이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어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노동시장 구조 변화와 대응 방안’을 주제로 열린 ‘한국은행-한국개발연구원(KDI) 노동시장 세미나’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이 총재는 올해 들어 시장의 기준금리 조기인하 기대에 확실하게 선을 긋고 있다. 지난 1월 금통위 통화정책결정회의 이후 가진 기자설명회에서 개인적 견해를 전제로 “적어도 6개월 이상은 금리를 인하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금통위원 전원이 향후 3개월은 기준금리를 동결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는 점을 공개하면서 한술 더 떠 상반기 인하는 없다고 쐐기를 박은 셈이다.

당시만해도 미국 연준(Fed)의 ‘3월 인하설’이 시장을 지배하면서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조기 전환의 기대가 커지던 시점이다. 최근 흐름은 이 총재 말대로 최소 상반기 안에 한국과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기대와 예상은 힘을 잃고 있다. 한은이 상반기까지 기준금리를 동결하면 통화정책 운용에서도 한 획을 긋는다. 지난해 1월 이후 연 3.50% 기준금리가 1년 6개월간 이어져 ‘최장기·고금리’ 정책이 지속된다.

이 총재는 통화정책 전환에 소극적인 데 반해 노동시장 개혁 등 구조개혁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문제제기의 내용과 방식도 갈수록 수위를 높이고 있다. 총재 취임이후 산업정책과 노동정책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한 보고서를 쏟아내고 있다. 내부 조직도 개편해 기존 조사국에 경제모형실과 지속가능성장실을 신설했다. 거시경제 진단에 머무르지 않고 대안을 적극적으로 내놓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해석이다.

특히 최근 발표한 돌봄서비스 분야에서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최저임금을 예외적으로 적용하자는 제안은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한은은 지난 5일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공동으로 주최한 세미나에서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를 통해 “돌봄서비스 부문은 인력난과 비용부담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는 점에서 (외국인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한 내용은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등의 근간을 이루는 성별, 국적별, 연령별 차별처우를 금지하는 원칙에 어긋난다는 노동계의 반발을 불러왔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우리에게 이미 낮게 매달린 과일은 더 이상 없다”며 “높게 매달린 과일을 수확하려면 어려움이 수반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동과 고령자에 대한 돌봄서비스 수요가 급증하고, 여기에 막대한 비용이 수반되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공적 지원에만 기댈 수 없다는 취지이다.

이 총재가 주도하는 한은의 논쟁적 문제제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우선 물가안정을 중심에 높고 통화정책을 펴야하는 중앙은행의 역할을 넘어선 월권적 행위라는 비판이 나온다. 심지어 한은 내부에서도 불편한 시선이 상당하다. 실질적인 정책결정권이 없는 상황에서 원론적인 수준의 언급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다. “어차피 안될 것을 판을 너무 키운다”는 내부 불만도 있다.

이에 반해 우리경제의 장래를 위해서 누군가 해야할 일이라는 평가도 있다. 한은 관계자는 “한은법의 목적에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 정부 경제정책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점이 규정돼 있다”며 “적극적인 의견개진이 가능하다”고 했다. 최근 기획재정부와 거시경제 협의를 위한 회의체를 차관급 주도로 만들기로 한 점도 이러한 배경이라는 설명이다.

오히려 일각에서는 문제제기가 여전히 본질에 접근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노동시장 개혁은 고용(해고)과 임금(직무급제) 등의 제도가 핵심인데 이를 건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거시경제 전문가는 “이 총재가 국가의 장기적 과제를 위해 구조개혁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면서도 “최저임금은 노동시장의 일부에 지나지 않고, 보다 근본적인 제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이 총재는 한국이 저출산과 고령화로 본격적인 장기 저성장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일본과 같은 장기 침체를 겪지 않으려면 젊은층의 노동시장 진입을 촉진하고, 이들이 마음껏 자신의 소질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재는 취임 당시 기자들과 만나서도 “(사회 및 경제구조가) 일본과 비슷한 경로로 가고 있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보다 진취적”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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