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이자·배당수익 증가…기업은 수익성 악화 전망

2024-03-26 13:00:01 게재

주담대 이자부담 증가에도 2경원 육박 가계금융자산 수익 늘어

차입에 의존한 중소영세기업 위기 … 대기업 설비투자도 감소

일본 17년 만에 금리인상

경제 각주체 후폭풍 예고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단기 정책금리를 마이너스금리에서 제로금리 수준으로 인상했다. 무려 17년 만에 이뤄진 정책금리 인상이 일본 경제 전반에 미칠 파장이 주목된다.

일본 정부와 BOJ 등 정책당국은 물가와 임금의 동반 상승에 따른 경제의 선순환에 기대를 걸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을 안고 있는 가계와 차입 의존도가 높은 영세기업은 경쟁력을 크게 잃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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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일본은행이 단기 정책금리를 마이너스 0.1%에서 0.0~0.1%로 인상했다. 전세계 주요국 중앙은행 가운데 사실상 유일하게 마이너스 정책금리를 유지했던 일본은행이 이른바 ‘금리가 있는 세상’으로 문을 열었다고 일본 언론은 일제히 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은행, 마이너스금리 해제로 금융정상화의 일보”라며 “보다 강력한 경제모드로 전환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금리인상과 함께 정책당국과 언론이 집중적으로 다룬 대목은 가계와 기업, 정부 등 경제주체의 일상과 경제적 선택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주목했다. 당장 주요 시중은행은 예금금리를 다음달부터 크게 올린다. 예금잔액만 190조엔(약 1700조원)에 이르는 미쓰비스UFJ은행은 기존 보통예금 금리를 연 0.001%에서 0.02%로 20배 인상했다. 미쓰이스미토모은행과 미즈호은행 등 다른 메가뱅크도 일제히 예금금리를 올릴 전망이다.

미쓰비시UFJ은행은 지난 19일 전국 영업점에 “예금잔액의 유지와 증가로 방침을 전환한다”는 지침을 시달했다. 초저금리시대에는 예대금리차가 너무 작아 계좌관리 비용도 안나온다면서 예금 유치에 소극적이었던 은행들이 적극적인 예금유치로 전환할 조짐이라고 요미우리신문은 분석했다.

미즈호파이낸셜그룹 키하라 마사유키 사장은 “금리가 있는 세계로 큰 변화의 계기가 됐다”며 “이번 결정은 게임체인저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요미우리신문은 “물가와 임금이 모두 상승하는 선순환이 실현되면 기업의 자금수요는 높아질 것”이라며 “은행은 기업대출 확대와 이자마진을 기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일본 시중은행의 예대마진은 2012년 0.45%에서 2016년 0.2%로 저하했다. 2016년 일본은행이 마이너스금리를 도입하면서 기업대출 등의 금리가 크게 하락했기 때문이다.

미즈호리서치&테크놀로지 추산에 따르면, 일본 국채금리 10년물 장기금리가 1.4%까지 오르면 가계의 이자 및 배당수익이 연간 3조6000억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 내각부에 따르면, 일본 가계의 금융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2140조엔(약 1경9000조원) 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5.1% 증가했다. 특히 전체 금융자산에서 예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어 금리인상은 곧바로 가계 이자수익의 증가로 이어질 전망이다.

다만 주택담보대출을 안고 있는 가계의 이자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일본의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2022년 기준 215조엔(약 1920조원)에 이른다. 따라서 현재 2% 중반대인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가 추가로 오를 경우 가계는 1조엔 가량의 추가적인 이자부담이 생길 것으로 미즈호리서치는 추산했다. 일본 주택담보대출의 70% 이상은 변동금리여서 추가 부담의 영향도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기업부담도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일본종합연구소 추산에 따르면, 차입금리가 1% 상승하면 기업 전체의 경상이익은 7.4% 감소할 전망이다. 특히 이자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중소영세기업의 경우 수익이 21.1% 감소할 것이라는 추산이다.

제국데이터뱅크 추산에 의하면 2022년 기준 일본 기업 가운데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상태가 수년간 지속되고 있는 이른바 ‘좀비기업’이 전체의 17% 수준인 25만개 기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2019년 15만개에서 불과 3년 만에 10만개가 늘어난 것으로 코로나19 당시 일본 정부가 막대한 규모의 ‘무담보·제로금리’를 남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앞으로 폐업의 위기에 몰릴 기업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지만 우량기업에 의한 인수합병이 원활하게 이뤄져 산업 전체에 활력을 가져올 수도 있다”며 “수익성이 낮은 기업은 정리되고, 성장성이 높은 분야로 우수한 인재가 이동하면 경제전체의 성장력은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거시경제 전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일본경제연구센터 전망에 따르면, 단기금리가 1% 상승하면 첫해에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0.3%, 3년째에는 1.2%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 내각부는 또 장기 국채금리가 2033년까지 3.4%까지 상승해 국채 이자부담이 연간 22조6000억엔(약 201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해 이자부담 7조6000억원(약 67조6000억원) 대비 3배 이상 늘어나는 셈이다.

한편 한국은행 도쿄사무소는 일본은행 정책결정과 관련한 보고서에서 “일본경제는 당분간 해외경제 둔화에 따른 하방압력이 있겠지만 펜트업 수요의 가시화 등으로 완만한 회복세를 이어갈 전망”이라며 “이후 소득과 소비의 선순환적 메커니즘이 서서히 확대돼 잠재성장률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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