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수사기밀 유출, 영화같은 현실

2024-05-03 13:00:02 게재

비밀이 있다면 그것을 빼내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다. 수사기밀의 경우 호기심에서 시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권력이나 자본이 배경인 경우가 적지 않다.

수사기관의 기밀 유출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여러 사건으로 수사기관들이 스스로를, 서로를 수사할 정도다. 현재까지 알려진 것들을 살펴보면 영화 속에서나 봄직한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게 배우 고 이선균씨 사건이다. 당시 마약 투약 혐의로 수사받던 이씨의 진술이 거의 실시간으로 중계돼 논란이 됐다. 뿐만 아니라 수사 과정 등이 담긴 내부문건이 통으로 언론사에 넘겨졌다. 결국 이씨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씨 사망 3개월이 지나도록 이에 대한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달 19일 ‘사법인권침해조사발표회’를 열고 경찰의 늑장수사를 비판했다. 변협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서였을까. 이틀 지나 경기남부경찰청은 인천경찰청 소속 간부를 긴급체포했다. 최근 인천지방검찰청 소속 수사관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여기에 불법촬영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축구선수 황의조가 제기한 수사기밀 유출 의혹도 조만간 그 실체가 드러날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서울남부지검이 수사중인 서울 서초경찰서 간부건도 있다. 대규모 피해자를 양산한 라임펀드 사건과 관련해 수사대상에게 수사정보를 유출하고 대가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전직 경찰관 연루 의혹까지 제기된 터라 사건이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의 한 경찰서 보이스피싱 담당 수사관이 한 시도경찰청 수사 대상이 되기도 했다. 시도청이 수사중인 보이스피싱 조직에 경찰 수사정보가 샜다는 의혹이 일었고 수사를 해보니 경찰관이 연루됐다는 의심이 제기됐다.

검찰도 자유롭지 않다. 최근에는 SPC 파리바게트 노조 와해 사건으로 기업 관계자와 기밀 유출 수사관이 각각 검거돼 기소된 바 있다. ‘기밀’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다.

마약이나 보이스피싱 사건처럼 주범의 실체를 모르는 상황에서 일선 수사관들은 준법 경계가 모호한 제3지대에 머물 때가 있다. 주범을 검거하거나 윗선 수사를 위해 수사 담당자가 끄나풀들과 불가피한 관계를 형성하려다 벌어지는 일이다. 이 정도라면 이해할 수 있다. 수사상황이 기밀로 유지되는 것보다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공익적 필요에 의한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들은 찬반 의견이 나올 수 있지만 금품 등 대가가 오간 경우는 용납할 수 없다. 국민들의 시선이 따가울 수밖에 없다.

간혹 수사기밀 유출 의혹이 제기되면 수사기관은 언론의 과잉 취재나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더 고민을 해야 할 때가 아닐까.

오승완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