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랑 속으로 빠져드는 남중국해, 세계 이목 집중

2024-05-17 13:00:01 게재

암초 둘러싸고 중국.필리핀군 잇단 충돌 … 미중간 패권경쟁속 ‘화약고’로 부상

필리핀 해안경비대(PCG)가 지난 4월 30일에 촬영하여 공개한 유인물 비디오 영상에서 캡처한 사진. 필리핀은 중국 해안 경비대가 4월 30일 필리핀 연안의 암초 근처에서 순찰 중 자국 선박 두 척에 물대포를 발사해 한 척이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남중국해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광활한 바다의 정치.군사적 수온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지정학적 파고가 긴장 수위를 한층 더 높이 끌어 올리면서 남중국해 정세가 휘청거린다.

발단은 중국이 지난해 8월 이래 필리핀 해경과 보급선의 남중국해 필리핀의 배타적 경제수역 내 ‘세컨드 토마스’ 암초에 대한 접근 차단을 위해 반복적으로 물대포 공격 및 의도적 선박충돌 등 강압 수단을 사용하면서 촉발됐다.

필리핀 보급선의 해병대 병력에 대한 보급 임무 수행을 중국이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강제로 제어하면서 필리핀 군인들에게 부상을 입히고 필리핀 선박들에 손상을 가하는 충돌을 야기함으로써 긴장을 격화시키고 전 세계의 이목을 다시 남중국해로 끌어들이고 있다.

◆11년째 진전없는 ‘아세안-중국’ 협상 =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필리핀 방위 공약은 ‘철통’ 같다고 중차대한 시기에 필리핀에 한껏 힘을 실어 주었다. 미국은 필리핀 군대, 공공 항공기 또는 공공 선박에 대한 이러한 공격은 1951년 미.필리핀 상호방위조약 적용 대상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필리핀은 이 암초 상에 1999년 의도적으로 좌초시킨 녹슨 군함 ‘시에라 마드레’ 호를 일종의 군사 전초기지로 유지하면서 소규모 해병대 병력을 상주시켜 중국의 영유권 주장에 맞불로 대응해 오고 있다. 이를 통해 자국 해양 영유권 보전과 주권 사수 및 해양자원 보존의 결기를 보여주고 있다. 배타적 경제수역은 유엔해양법협약이 연안국에 연안 기선으로부터 200 해리 수역에 걸쳐 어획 및 석유.가스 자원 조사와 개발을 위한 독점적 권한을 부여한 수역이다.

중국은 베트남 및 말레이시아 소속 조사.석유 탐사선에 대해서도 유사한 방해 및 협박 전술을 사용한 적이 있다. 이들 두 나라와 브루나이 및 대만 역시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가 리아우 제도 북나투나해에서 중국과 영유권을 다투고 있다. 2002년 아세안-중국 양측은 ‘남중국해 당사국 행동선언’을 채택, 갈등 요인을 외교적으로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보다 구속력 있는 ‘행동규칙’을 성안하기 위해 2013년 9월부터 협상을 시작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국제중재판소 “중국, 유엔해양법협약 위반” = 중국은 남중국해의 거의 90%에 해당하는 수역에 걸쳐 일방적으로 9단선을 그은 후 이 수역을 자신의 내해로 선포, 이 안에 있는 도서, 암초, 물 등 모든 것을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한다. 이곳에서 국제법 기본 원칙인 항행의 자유와 상공 비행의 자유를 인정치 않아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와 갈등을 빚으며 긴장 수위를 높이고 있다. 2016년 국제중재재판소는 중국의 남중국해 9단선 설정은 역사적 근거가 없으며 유엔해양법협약 위반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위기, 대결 및 심지어 전쟁과 같은 위험의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 9단선 전역에 걸쳐 공격적으로 영유권 주장을 하고 있다. 새로운 남중국해 위기는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위기는 필리핀의 배타적 경제수역 내 또 하나의 산호초인 ‘스카버러’ 암초(Scarborough Shoal)를 군사기지화 하려는 중국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의해 촉발될 수 있다. 중국은 스카버러 암초를 2012년 필리핀으로부터 빼앗은 후 계속 점령하고 있다.

다른 한 가지 가능성은 ‘시에라 마드레’호로 인한 치명적 충돌을 수반할 수 있는 상황 발생이거나 이 지역에서 미국 또는 동맹국 군용기 가까이에서 중국 군용기에 의한 기동으로 촉발될 공중 충돌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이제 남중국해는 서태평양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강대국 간 무력 충돌을 유발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화약고의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미국 주도 다층적 소다자 협의체 출범 = 이처럼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미중간 패권 경쟁이 날로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공격적 영유권 주장과 강압적 행동이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새로운 ‘소다자 전선’이 형성되고 있으며 동시에 기존의 양자 동맹 전선이 업그레이드되거나 더 강화되고 있다.

지난 4.11 바이든 대통령은 기시다 일본 총리와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을 백악관으로 초청하여 역사상 최초로 미.일.필 3국 정상회의를 주최하였다. 이는 남중국해에서 필리핀에 대한, 그리고 동중국해에서 일본에 대한 중국의 점점 더 공격적인 행동에 대한 공동 전선 투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일본 및 필리핀과의 상호방위 조약에 대한 미국의 공약은 철통같다고 재차 공언하였다.

이번 3국 정상회의는 작년 8월 바이든 대통령 이니셔티브로 한.미.일 3국간에 출범시킨 캠프데이비드 체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또한, 미.일.필 협의체는 캠프데이비드 3국협의체에 더해 미.영.호 안보 협의체인 오커스(AUKUS)와 미.일.인.호 4자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까지 이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같이 미국 주도로 일련의 3~4국간 다층적 소다자 협의체를 출범시킴으로써 더 촘촘한 대중국 공동전선을 구축하려는 미국의 구상이 현실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일.필 3국은 이번 워싱턴 정상회의 성과를 구현하기 위해 3국이 더 빈번하고 정기적으로 남중국해에서 합동 순찰과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하기로 하였으며 이는 중국에 대해 강력한 경고장을 날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도 필리핀과 군사협력 증가 예상 = 호주 또한 올해 미일필 3국 합동 군사훈련에 합류함으로써 4개국 합동 군사훈련이 남중국해 필리핀의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실시된다고 4국 국방장관이 공동성명에서 발표하였다. 미.필간 최대 규모의 연례 합동군사훈련인 발리카탄(Balikatan)에 올해 처음으로 프랑스 해군과 호주 해군도 합류할 것이라고 한다. 발리카탄 훈련이 필리핀 영해 12해리를 넘어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해역에 걸쳐 개최되기로는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한편, 일본과 필리핀 간의 군사협력 또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양국은 “호혜적 접근 협정”(Reciprocal Access Agreement) 조기 체결을 추진 중이며 이를 통해 두 나라 군대의 상호 운용성을 높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미국에 이어 일본도 필리핀에 군병력을 순한 배치하려는 이유도 중국의 급속한 군사력 팽창 때문이다. 작년 11월 기시다 총리 필리핀 방문시 일본은 필리핀 해군에 연안 경비정 레이다를 제공하기로 동의한 바 있다.

작년 4월 필리핀 정부는 중국 위협에 맞서 미국과의 방위협력확대협정(EDCA)에 따라 미군이 기존에 사용 중인 기지 5곳에 추가로 사용하게 된 군 기지 4곳을 공개했다. 이 중 3곳이 대만과 불과 400여 km 떨어진 남중국해의 인접 지역으로 결정되었으며 지리적으로 중국 본토의 ‘턱밑’에 가깝다. 나머지 한 곳은 9단선 내 스프래틀리 군도에 인접한 팔라완 부근의 발라박섬이다. 또한, 이달 초 미.필.호 3국은 호주 공중 감시팀의 지원 하에 남중국해에서 실시한 합동 해상 군사훈련을 통해 모의 적 군함을 격침시키는 등 입체적 타격 능력을 과시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훈련은 외국의 필리핀 침략 시나리오를 포함하였으며, 3국의 훈련 참가 병력 수는1만6000명을 넘어섰다.

◆남중국해, 지구촌 수출입 핵심통로중 하나 = 남중국해는 미중 경쟁의 격전지가 되었다. 남중국해는 평화.안정.번영의 바다가 되어야 한다.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꿈을 꾸며 세계와 대양으로 진출하는 징검다리가 되어야 한다. 세계와 호흡하고 소통하는 열린 바다가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법이 지배하는 바다가 되도록 모두가 집단적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의 정당한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 남중국해는 이미 우리의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주요 국제 수로이다. 매년 3조4000억달러의 지구촌 수출입 물동량이 남중국해를 통해 전 세계로 이동한다. 세계 선박 통행량의 25%가 이 해역을 지나간다. 우리 수출입 물량의 절대 다수도 남중국해를 통해 이루어진다. 국제 무역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 남중국해는 전 세계 어족 자원의 12%를 차지하는 수산물의 보고로서 세계 시민의 영양선이자 생명선이다. 남중국해 해저에는 엄청난 규모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되어 있다.

지금까지 한국은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중 갈등에 연루되지 않기 위해 한발 물러나 방관자처럼 행동했다. 남중국해 관련 국제 논의에도 참여하지 않고 ‘침묵외교’로 일관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와서 글로벌 중추외교를 표방하면서 ‘힘에 의한 현상변경 반대’라는 분명한 입장을 정립했다. 남중국해는 인태지역 모든 국가의 경제와 안보에 영향을 미치고 이 지역 안정과 평화가 걸려있는 중대 사안이자 유엔해양법 질서 유지의 문제이다. 우리와 상관없는 먼 나라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안정적 해양 수송로를 포함해 개방적 통상국가 한국의 ‘사활적 이해’가 걸려있다.

정해문

전 태국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