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짙어진 김건희 여사 ‘사법리스크’
1심 무죄 도이치 ‘전주’ 항소심서 방조혐의 유죄 인정
시세조종 3개 계좌 동원 김 여사 기소 압박 커질 듯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항소심에서 ‘전주’로 참여한 손 모씨가 방조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손씨와 유사한 역할을 했다는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아온 김 여사에 대한 기소 압박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권순형 부장판사)는 전날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의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항소심 선고공판을 열고 권 전 회장에게 징역3년에 집행유예 4년과 벌금 5억원을 선고했다. 또 2010년 10월 이전 1차 주가조작 시기 ‘주포’ 이 모씨에게는 징역 2년에 벌금 5000만원, 2차 주가조작 시기의 주포 김 모씨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과 벌금 1억원을 선고하는 등 9명의 피의자 모두 유죄 판결했다.
권 회장 등은 2009~2012년 도이치모터스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2008년 도이치모터스가 우회상장한 후 주가하락이 이어지자 권 전 회장이 주가조작 세력과 공모해 90여명의 계좌 157개를 동원, 통정매매 등을 통해 2000원대였던 주가를 8000원까지 높였다고 보고 재판에 넘겼다.
권 회장 등의 주가조작 혐의에 대한 2심 재판부의 판단은 1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항소심에서 관심을 모은 건 ‘전주’ 손씨에 대한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도이치모터스 주식에 거액을 투자하고 시세조종에 자신의 계좌가 활용되는 등 주가조작 과정에서 의심받는 김 여사의 역할과 유사해서다.
손씨는 자신과 아내, 회사 명의 계좌 등을 이용해 고가매수 등 이상매매 주문을 제출하고 대량매집행위를 하는 등 시세조종에 가담한 혐의를 받아 ‘전주’ 가운데 유일하게 주가조작 공범으로 기소됐던 인물이다. 1심 재판부는 손씨가 “도이치모터스 주식에 관해 이른바 작전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주가조작 일당과 공동으로 시세조종에 나섰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검찰은 항소심 과정에서 공소장을 변경해 손씨에게 주가조작 방조 혐의를 추가했다. 2심 재판부는 손씨의 공범 혐의에 대해선 1심과 같이 무죄로 판단하면서도 방조 혐의는 인정했다. 재판부는 손씨에 대해 “다른 피고인들이 인위적으로 시세를 부양하기 위해 매매 성황 오인·매매 유인 목적으로 시세조종 행위를 하고 있음을 알았던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며 “손씨는 단순히 피고인들에게 돈을 빌려준 전주가 아니라 피고인들이 시세조종 행위를 하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에 편승했다”고 밝혔다.
당초 1심 재판부가 손씨의 공범 혐의를 무죄로 선고하자 대통령실과 여당에선 이를 근거로 김 여사의 무혐의를 주장했었다. 하지만 손씨의 방조 혐의가 인정되면서 김 여사도 재판에 넘겨 법원의 판단을 받아봐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됐다.
2심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김 여사 명의 계좌 3개가 주가조작에 동원된 것으로 인정했다. 다만 김 여사가 기소되지 않아 공모 여부는 판단하지 않았다.
법조계에선 방조 혐의는 공범보다 범행이 인정되는 범위가 넓은 만큼 김 여사의 방조 혐의가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김 여사의 경우 손씨보다도 시세조종 가담 혐의가 더 커 보인다”며 “공범까지는 몰라도 최소한 방조 혐의에 대해선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 1심 재판부는 102건의 통정·가장매매를 유죄로 판단했는데 이 중 김 여사의 계좌를 이용한 거래가 48건에 달했다. 검찰은 또 김 여사와 그의 모친 최은순씨가 도이치모터스 주식 거래로 얻은 이익이 23억원에 가깝다는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 반면 손씨는 결과적으로 1억원대의 손해를 입었다.
이와 관련 검찰 관계자는 “손씨와 김 여사 사례는 사실관계가 달라 단순 비교해 일률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며 “판결문 내용과 법리를 면밀히 분석해 상고 여부를 검토하고 진행 중인 수사에도 참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검찰은 도이치모터스 시세조종 기간 계좌가 동원된 계좌주 91명의 혐의를 개별적으로 따져보기 위해 김 여사 모녀를 포함해 아직 기소되지 않은 85명을 상대로 사실상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은 7월 20일 대통령경호처 소속 보안청사에서 명품가방 수수 의혹과 함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 김 여사를 대면조사한 데 이어 지난 7일에는 최은순씨를 검찰청사로 소환해 조사했다.
구본홍·서원호 기자 bhko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