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재편으로 미 항만 지도가 바뀐다
대만·일본·한국 대미 수출, 대중 수출보다 많아져 … 미 동부 항구들, 탈중국흐름에 기회 포착
미국의 중국 배제 공급망 재편이 가시적인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아시아 주요 경제국들의 대미 수출이 대중 수출보다 많아지고 있다. 동시에 LA 등 미국 서부 항만을 연결했던 중국의 대미 수출이 줄어들 것을 예상하는 서배너 등 동부 항구들이 미국 최대 무역항 지위를 노리고 인프라 개선에 나서는 등 급피치를 올리고 있다.
대만의 대미수출 사상최고치 기록
최근 대만정부가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시장에 대한 대만의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80% 늘어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또 올 1~4월 대만의 대미 수출량은 같은 기간 대중 수출량을 추월했다.
대만의 대중 수출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홍콩을 포함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대만뿐 아니다.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주요 경제국의 대미 수출이 늘고 대중 수출이 줄어들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16일 “이는 아시아의 주요 동맹국들에 대해 광범위한 무역개편을 꾀하는 미국의 노력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전했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컴퓨터 칩에서 전기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중국제품에 대한 관세를 인상했다. 미 백악관은 “이러한 변화로 연간 180억달러에 달하는 수입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미국은 특히 민감한 첨단 기술제품에 대한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 노력중이다. 따라서 아시아의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산에 대한 미국의 관세를 피하기 위해 동남아시아에 대거 투자하고 있다. 동시에 대만과 한국 일본 기업들은 첨단 기술산업에 대한 보조금을 활용하기 위해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는 등 적극적인 대미 투자에 나선 상황이다.
프랑스 투자은행 나티시스의 이코노미스트 트린 응우옌은 “무역전쟁에 이어 투자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 기업들은 중국 내 사업확장을 꺼리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유럽기업 가운데 중국을 최고의 투자처로 꼽은 곳은 13%에 불과했다. 2021년엔 그보다 2배 많은 기업들이 중국을 최고 투자처로 여겼다.
일본기업들의 대중국 신규투자는 2021년 정점을 찍은 후 감소하고 있다. 한국의 현대자동차는 판매 부진으로 중국공장 매각을 준비하고 있고, 일본 미쓰비시자동차는 중국시장에서 철수했다.
그동안 대만의 대미 수출품 중 상당수는 중국 내 생산공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았다. 21세기 들어 대만이 중국 본토에 거액을 들여 공장을 설립했기 때문이다. 대만기업들은 최종 제품을 미국이나 유럽으로 보내기 전 조립 등을 위해 중국으로 부품을 배송했다.
하지만 블룸버그에 따르면 최근 미국이나 유럽에 대한 대만 수출품이 중국을 거치지 않은 채 이뤄지기 시작했다. 또 2010년 146억달러에 달했던 대만기업들의 대중국 신규투자는 지난해 30억달러로 급감했다.
중국 무역정책을 연구하는 싱가포르경영대 헨리 가오 법학 교수는 “아시아 기업들의 중국 내 생산시설을 미국에 우호적인 국가로 이전하는 니어쇼어링이나 프렌드쇼어링 관점에서 보면 미국정부의 대중국 정책은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이런 상황은 코로나19 팬데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시작한 무역전쟁이 글로벌 공급망을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전했다.
공급망 재편, 미국 동부해안에 기회
한편 아시아의 대미 수출패턴이 변화하면서 미국 동부에 위치한 항만들은 이를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다.
대서양에 접한 미국 동남부 조지아주는 수십억달러를 들여 서배너항, 브런즈윅항 등의 물류시설을 개편하고 있다. 태평양 연안의 경쟁 항구들로부터 물동량을 빼앗아오기 위해서다. 조지아주 항만청은 로스앤젤레스(LA), 롱비치, 뉴욕-뉴저지 등 미국 3대 컨테이너항만에 도전장을 내기 위해 향후 10년간 45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일단 조지아주 당국은 1억8900만달러를 들여 미국에서 4번째 큰 서배너항 교량의 현수 케이블을 단축하고 상판을 최대한 높이는 등 여러가지 업그레이드 작업을 진행할 방침이다. 더 큰 선박이 부두로 더 쉽게 진입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로스앤젤레스항구와 롱비치항구는 오래전부터 미국 최고의 자리를 지켜왔다. 중국의 대미수출품이 이곳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고 항구를 놓고 벌이는 수십년에 걸친 경쟁이 재편되고 있다. 2022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혼란기에 뉴욕-뉴저지 항구가 롱비치를 제치고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애플과 테슬라, 월마트 같은 미국 기업들은 중국 일변도에서 벗어나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미중 무역전쟁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다. 미국으로 향하는 더 많은 수출 생산이 중국에서 인도 등으로 전환됨에 따라 미국 동부 해안이 지리적 우위를 갖춰가고 있다. 인도와 스리랑카 등 남아시아 국가들이 수에즈운하를 통해 대서양을 거치면 태평양 항로보다 더 빠르게 물품을 배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지아주 항만청에 따르면 뭄바이와 문드라, 피파바브 등의 인도 항구에서는 미국 서부 해안으로 가는 것보다 동부 해안으로 가는 여정이 3~5일 단축된다.
미국내 요인도 동부 해안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많은 미국인들이 선벨트 동남부 지역으로 이동하고, 남부의 자동차산업이 성장하고 있다. 반면 서부 해안 항구들의 확장력은 제한된 상황이다.
한국 현대자동차는 조지아주에 76억달러 규모의 전기차 및 배터리 공장인 ‘메타플랜트’를 짓고 있다. 올해 4분기 양산에 들어가면 조지아주 항구들 모두 활기를 띨 전망이다. 메타플랜트는 서배너에서 약 50㎞, 브런즈윅에서 130㎞ 떨어져 있다.
서배너와 브런즈윅을 관장하는 조지아주 항만청의 그리프 린치 사장은 “중국은 앞으로도 한동안 여전히 대미 수출강국을 유지할 것이다. 하지만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시장점유율도 바뀌고 있다”며 “컨테이너 수출입 측면에서 소비와 성장을 주도하는 모든 분야가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에 따른 성장을 감당할 수 있도록 투자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와의 교역이 관건
조지아주의 잠재력 발현 여부는 인도에 달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현재까지 조지아주와 인도의 교역엔 부침이 있었다. 조지아에서 인도로 향하는 수출은 2022년에 43% 증가했지만, 지난해엔 25% 감소했다. 수출과 수입을 포함한 양자 간 총 교역액은 2022년 39% 증가한 62억4000만달러였지만 지난해엔 13% 감소한 54억3000만달러였다.
이에 대해 조지아주 경제개발부의 국제무역 부국장인 리잔 그루팔로는 “그같은 변동성은 신흥시장에서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변동성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조지아주는 서배너와 브런즈윅에 대해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확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지아주의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2030년 서배너항의 연간 컨테이너 처리량은 올해 예상치 700만개에서 1200만개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시기, 항구처리능력을 100% 가동한 LA항이나 롱비치항의 물동량보다 많은 규모다.
블룸버그는 “이는 서배너항이 향후 10년 내 미국 1위의 항구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