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간단 필로폰제조자 국내 첫 검거
중국계, 원료 들여와 호텔서 제조
해외마약조직 한국 거점화 우려
“아니 필로폰을 이렇게 간단히 만든다고?”
지난달 중순 인천의 한 호텔. 필로폰 유통책의 객실 압수수색한 마약수사관들의 넋이 나갔다. 팔다 남은 필로폰 양에도 놀랐지만, 경찰들 눈에는 마약제조 공장이 펼쳐져 있었다. 단순 유통책인줄 알았던 A는 제조자이자 유통책이었다. 그것도 필로폰 공정방식을 간소화한 초간단 제조방식이었다.
16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마약범죄수사대는 마약제조자인 중국계 외국인 A를 구속송치했다. A는 국내에서 처음 검거된 초간단 마약제조자로 기록됐다. 경찰은 범죄수법을 유관기관에 전파하고, 알려지지 않았던 원료가 해외에서 들어오지 못하도록 관세청에 협조를 구했다.
◆복잡한 실험기구 없이 제조 = 국내 필로폰 유통책들은 해외에서 몰래 들여온 마약에만 손을 댔다. 직접 제조는 공정과정이 복잡하고, 발각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려진 것처럼 마약제조는 복잡한 화학실험 도구를 필요로 했다. 또 심한 악취가 발생하기 때문에 인적이 드문 산속 등에 제조시설을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마약수사관들이 발견한 제조시설은 호텔 객실이었고,
공정도 단순했다. 그동안 경찰이 알고 있던 마약제조의 공식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수사기관은 해외에서 들여온 필로폰 외에 국내에도 제주자인 ‘쿡’이 있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감기약 등에서 일부 성분을 빼내 저품질 필로폰을 생산한 제조자를 검거한 적이 있지만, 생산된 필로폰의 양이나 검거 사례는 소수라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지난해 경찰이 검거한 마약사범 1만7817명 중 제조사범은 0.3%인 58명이었다. 검거된 이 대부분은 대마를 재배, 가공한 경우다.
하지만 A가 호텔 객실에서 만들어낸 필로폰은 5.6kg에 달했다. 1인당 0.3g을 투약한다면 180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다. 가격만 180억원에 달한다.
◆원료는 화이트와인으로 위장 = 경찰 수사 결과 A는 지난달 3일 동남아 마약조직의 지시를 받고 한국에 입국했다.
한국에 들어온 A는 호텔에 짐을 푼 뒤 직접 필요한 기구를 구입했고, 액체 원료를 받아 단순 가공했다. 필로폰 5.6kg 생산에 걸린 시간은 열흘 남짓에 불과했다.
A는 화이트와인으로 위장한 원료를 B로부터 전달받았다. 하얀색 투명액체인 이 물질은 외관은 물론 점성도 화이트와인과 유사했고 악취도 나지 않았다. B는 A에게 원료물질을 전달한 뒤 해외로 출국했다. 경찰은 B를 검거하기 위해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했다.
경찰은 구체적 제조 방식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다만 “필로폰을 종전 보다 쉽게 제조하는 점, 동남아 마약조직들이 한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A가 제조한 필로폰이 시중에 풀리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경찰은 충격에 빠졌다. 범죄 수범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A는 첫 범행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A와 같은 범행이 과거에 있었는지 아니면 또 다른 곳에서 다른 필로폰 제조·유통책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