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부부, 혼인무효 불허’ 판례 바뀔까
대법 전원합의체, 40년만에 23일 선고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후 첫 전합 판결
40년 만에 이미 이혼한 부부의 ‘혼인무효 불허’ 대법원 판례가 변경될지 관심을 끈다. 지난해 12월 조희대 대법원장이 취임한 후 재판장으로서 내리는 첫 전원합의체 판결로, 지난해 9월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퇴임 직전 마지막으로 선고한 뒤 8개월 만이다.
21일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조희대 대법원장)는 23일 오후 2시 이혼한 당사자에게 혼인무효 처분을 인정하지 않는 1984년 대법원 판례를 적용한 혼인무효 소송 등 3건에 대한 상고심 선고를 내린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고 △소부에서 의견이 일치되지 못하는 경우 △명령·규칙이 헌법 또는 법률에 위반된다고 인정하는 경우 △종전 대법원에서 판시한 헌법·법률·명령 또는 규칙의 해석 적용에 관한 의견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소부에서 재판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사건 등을 재판한다.
이날 선고될 대법원 전합의 가사소송 사건의 쟁점은 두가지로 △이혼조정이 성립해 이혼신고를 마친 원고에게 혼인의 무효 확인을 구할 확인의 이익이 인정되는지 여부 △이혼으로 이미 해소된 혼인관계의 확인의 이익을 부정한 대법원 판결(대법원 82므67)의 변경 여부이다.
이번 가사소송은 2001년 12월 결혼해 2004년 10월 조정을 통해 이혼한 부부 중 한쪽이 2019년 “혼인의사를 결정할 수 없는 극도의 혼란과 불안·강박 상태에서 혼인에 관한 실질적 합의없이 혼인신고를 했다”며 혼인무효를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원고는 또 이 주장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예비적으로 “혼인의사를 결정할 수 없는 정신상태에서 피고의 강박으로 이 사건 혼인신고를 했다”며 혼인취소를 청구했다.
혼인무효는 당사자 간 합의없는 혼인이었을 때 인정된다. 하지만 1, 2심은 합의 여부와 무관하게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라 혼인무효를 인정하지 않고 원고의 소를 각하했다. 또 예비적 청구인 혼인취소 청구도 각하했다. 당시 재판부는 “혼인취소의 효과는 장래에 혼인효력이 소멸한다는 점에서 이혼의 효과와 동일하므로, 이미 이혼으로 혼인관계가 해소된 이상 혼인취소의 소를 제기할 이익이 없다”고 밝혔다.
1984년부터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대법원 기존 판례는 이미 이혼한 부부의 혼인은 사후에 무효로 돌릴 수 없다고 정한다. 이미 혼인관계가 끝난 사이인데 굳이 혼인무효를 인정받는 게 실익이 없다는 판단이었다.
당시 판례는 “단순히 여성이 혼인했다가 이혼한 것처럼 호적상 기재되어 있어 불명예스럽다는 사유만으로는 확인의 이익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혼한 부부라도 혼인무효 사유에 해당한다면 결혼과 이혼 기록이 서류에 남는 이혼 대신 가족관계증명서에서 혼인 이력 자체가 지워지는 혼인무효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간 적지 않았다.
특히 외국 여성이 국제결혼을 명목으로 국내에 입국해 혼인신고를 한 뒤 도주하는 경우에 주로 문제가 됐다. 이런 경우 혼인무효 사유에 해당하지 않아 남성이 아무 잘못이 없더라도 혼인관계를 끝내려면 이혼할 수밖에 없는데, 만약 이후 다른 여성과 재혼할 경우 기존 이혼 이력이 남아 있어 부당한 피해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별건으로 선고될 행정 사건은 2015년 담뱃세 인상을 앞두고 인상 전 가격으로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낸 한국필립모리스에 추가 부담금을 내게 한 정부의 처분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사건이다. 폐기물부담금의 경우 구 자원재활용법 시행령의 부칙규정이 개정 전 이미 제조장에서 반출된 담배에 대해서도 부담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시행령이 소급입법 금지의 원칙에 위반돼 위헌, 무효인지 여부가 쟁점이다.
또 다른 형사 사건은 별건으로 구속된 피고인에게 국선변호인을 선정하지 않은 원심의 절차가 필요적 국선 사유를 규정한 형사소송법을 위반했는지를 다투는 사안이다.
23일 선고하는 3건 외에도 전원합의체에는 총 11건이 계류 중이다. 동성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할지, 소규모 공중이용시설에 장애인 편의 제공 의무를 면제하는 것이 타당한지 등이 쟁점인 사건들이다.
한편 마지막 전원합의체 선고는 김 전 대법원장의 임기 만료 3일 전인 지난해 9월 21일 나왔다. 이후 8개월간 합의체에 공석이 있어 판결을 선고하지 못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