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글로벌 반도체산업 환경의 변화

2024-05-23 13:00:01 게재

한국의 반도체산업은 우선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으며, 다음으로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에 육박해 수출 주도의 우리 경제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최근 ‘전쟁’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세계 주요국의 반도체 패권경쟁에서 뒤처지게 된다면 한국 경제에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는 것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많은 형태의 제조업은 제조 기업이 핵심 부품은 직접 생산하고 나머지 부품은 외부로부터 조달한 후 이들을 조립해 완성품을 생산하는 구조가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제조 기업의 핵심 역량은 완성품의 디자인과 핵심 부품 생산기술과 능력이 된다. 대표적인 예로 자동차산업을 보면 제조 기업은 자동차를 설계한 후 핵심 부품인 엔진을 직접 생산하고 나머지 부품은 협력사를 통해 조달해 생산하고 제조 기업의 상표로 판매한다. 자동차 회사가 외부에서 부품을 조달해서 설계에서 완성차 제조까지 일괄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최고의 효율성과 경제성 추구하면서 구축된 반도체 공급망

반도체도 발명된 초기에는 한 기업이 모든 공정을 수행했으나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쳐 설계 전문기업인 팹리스와 제조 전문기업인 파운드리가 등장하면서 설계와 제조가 분리되었다. 제품의 종류가 한정되어 있고 박리다매로 판매되는 메모리반도체와 차량용 반도체 등 특수 품목 일부는 여전히 한 기업이 설계부터 제조까지 모든 공정을 수행한다.

하지만 최근 메모리반도체가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에 미치지 못하므로 나머지 70% 이상은 설계와 제조가 분리된 것이다. 최근 인공지능(AI ) 반도체로 주목받고 있는 엔비디아 역시 반도체 설계만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다. 엔비디아는 설계만 하고 생산은 외부에 위탁하는데도 지난 2023년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삼성전자보다 높게 나타났다.

반도체 제조공정 또한 다른 제조업과는 차이가 있다. 반도체 제조공정은 웨이퍼 제조에서부터 산화 포토 식각 증착 등 크게 8대 공정으로 나뉜다. 공정의 핵심은 실리콘 웨이퍼 가공인데 각 공정별로 특수한 장비와 화학소재가 투입되고 산화에서 증착까지의 과정을 수백번 반복해 제품이 완성된다. 이 공정에 필요한 제조 장비와 소재 기업이 반도체 기업의 주요 협력사가 된다. 제조 장비와 소재의 성능이 반도체 성능을 좌우하므로 연구개발 단계부터 협력사와 긴밀한 관계가 요구되며, 도중에 다른 기업으로 전환하는 데는 커다란 비용이 들어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선 새로운 기업이 진입하기에는 장벽이 너무 높다.

반도체산업 구조 특성상 설계에서 제조까지 공정이 세분되어 전문기업들이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협력관계를 형성해 왔다. 그리고 제조 장비와 소재 기업의 협력관계 또한 다른 산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하게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또 하나 특이한 점은 국경이나 지역에 대한 제한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반도체 생산을 위한 최고의 효율성과 경제성을 추구하면서 구축된 것이 바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다.

글로벌 반도체산업 변화에 대비하는 전략 세워야

최근 반도체산업과 관련된 주요국들이 경제 안보와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를 외치며 기존의 협력관계가 무너지고 있다.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은 자국 혹은 역내에 반도체 제조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외국 기업에까지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산업 공급망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의 반도체산업 역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는 중국이 맹렬히 쫓아오고 있으며, 파운드리는 글로벌 공급망이 아니라 지역 공급망으로 재편되고 있다. 우리 기업과 정부는 메모리반도체 경쟁력 유지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반도체산업 발전을 위해 국내 반도체산업 생태계를 강화하고 글로벌 반도체산업 변화에 대응하는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