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건 구속 피고인도 변호인 없으면 재판 불가”
대법, ‘국선변호인 선정 사유’ 넓게 해석
‘피고인 구속된 때’ 의미 기존 판례 변경
이미 구속 상태이거나 유죄 확정으로 수형 중인 피고인도 별도의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경우 변호인이 없으면 재판받을 수 없으므로 법원이 국선변호인을 선정해줘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구금 상태에서 방어권이 제약된 피고인에 대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 헌법상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조희대 대법원장·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23일 상해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3개월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인천지법은 2020년 9월 별건인 건조물침입죄 등으로 공소제기된 A씨에 대해 징역 1년 선고와 함께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이 판결은 2021년 3월 확정됐다.
이번 사건은 2020년 12월 공소제기돼 A씨가 별건으로 구속되거나 확정된 유죄판결의 집행으로 구금된 상태에서 공판절차가 진행됐다.
A씨는 당시 ‘빈곤 기타 사유’를 이유로 국선변호인의 선정을 청구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이를 기각한데 이어, 원심(2심)에서도 국선변호인 없이 A씨만 출석한 상태에서 공판기일이 진행됐다.
1심은 A씨에 대해 징역 3개월을 선고했다. 원심에서는 1심 판결을 파기하면서도 A씨의 건조물침입죄 등 해당 사건의 죄가 제37조 후단의 경합범 관계에 있다며 징역 3개월을 선고했다.
A씨는 구속 상태에 있었던 자신을 위해 국선변호인이 선정되지 않은 채 진행된 1심 및 원심의 재판 과정이 위법하다는 이유로 상고했다.
상고심 쟁점은 형사소송법 33조 1항 국선변호인 선정사유인 ‘피고인이 구속된 때’의 의미를 종래의 판례 법리처럼 해당 형사사건에서 구속돼 재판을 받는 경우로 한정해 해석할 것인지, 아니면 별건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돼 집행되거나 다른 형사사건에서 유죄판결이 확정돼 그 판결의 집행으로 구금 상태에 있는 경우도 국선변호인 선정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것인지 여부였다.
대법원 전합은 별건으로 구속돼 구금 상태에 있는 경우에도 국선변호인을 선정해야 한다고 봤다.
대법관 다수의견(10명)은 “필요적 국선변호인 선정사유인 ‘피고인이 구속된 때’라고 함은 피고인이 해당 형사사건에서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경우에 한정된다고 볼 수 없고, 피고인이 별건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집행되거나 다른 형사사건에서 유죄판결이 확정되어 그 판결의 집행으로 구금 상태에 있는 경우도 포괄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동원·노태악·신숙희 대법관 등 3명은 “별건으로 구속되거나 형 집행 중인 구금 상태까지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법 문언 및 체계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입법자의 의사에도 반한다”며 반대 의견을 남겼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사건 조항이 정한 필요적 국선변호인 선정사유인 ‘구속’의 의미를 해당 형사사건의 구속에 한정해 해석한 종전 대법원판결을 변경하면서, 필요적 국선변호인 선정사유인 ‘구속’은 별건으로 구속되거나 형 집행 중인 구금 상태를 포괄한다는 새로운 법리를 보여준 것”이라고 의의를 뒀다. 또 “필요적 국선변호인 선정사유인 ‘구속’의 의미를 종전에 비해 넓게 해석함으로써 국가의 공권력에 의한 구금으로 방어권이 취약한 상태에 놓인 피고인에 대하여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 헌법상 기본권을 보다 충실하게 보장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전원합의체 판결의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