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2기 공수처의 과제

공수처, ‘격노+구체적 지시’ 규명 과제

2024-05-27 13:00:31 게재

대통령실·안보실 등 ‘윗선’ 수사 불가피

오동운 “채상병 수사외압 의혹사건에 매진”

▶1면에서 이어짐

오동운 처장이 취임하면서 공수처가 수사력 검증 시험대로 떠오른 채상병 수사외압 의혹 수사에 집중할 전망이다. 특히 ‘VIP 격노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 만큼 보다 ‘구체적 지시’가 있었는지를 밝혀내는 게 수사의 주요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가 확보한 ‘VIP 격노설’ 관련 증거는 지난해 7~8월 채 상병 사건 조사 결과의 이첩 보류, 자료 회수, 국방부의 재검토 등에 대통령실의 관여가 있었다는 의혹을 뒷받침할 정황으로 꼽힌다.

공수처로서는 현재 피의자로 입건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나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등을 넘어 결국 대통령실과 국가안보실 등 ‘윗선’으로 수사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는 ‘격노설’의 전달 과정과 관련된 이들로 구체적으로 어떤 지시가 있었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의 ‘격노’를 확인하더라도 군 문제에 관해 의사 표현을 한 것뿐이므로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가 될 수 없다는 최근 여권 일각의 주장도 나오고 있어 법적 책임 소재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이냐는 쟁점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만약 윤 대통령이 명확한 지시를 한 것이 아닌데도 대통령실 관계자들이 구체적인 요구를 했거나, 혹은 군 관계자들이 압박을 느껴 이첩 보류 등을 결정했다면 이들에게 직권남용의 책임이 한정될 수 있다.

반면 윤 대통령이 구체적 지시를 한 것으로 드러난다면 위법한 지시를 이행한 하급자들은 책임을 덜 가능성도 있다.

물론 이는 당시 이 전 장관 등의 이첩 보류 및 자료 회수 등 지시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법리적 판단을 전제로 한다.

앞서 공수처는 지난 25일 해병대 채상병 순직 사건 기록 회수 후 조사 과정에 관여한 국방부 조사본부 관계자 A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군검찰이 경찰로부터 회수한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보고서를 넘겨받아 재검토하면서 당초 8명이던 주요 혐의자를 2명으로 줄여 경찰에 재이첩했다. 이 과정에서 김동혁 국방부 검찰단장, 박경훈 전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는 지난해 8월 해병대측이 경북경찰청에 채상병 사건 수사 결과 기록을 이첩하는 과정에서 이를 회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사건을 국방부 조사본부에 재배당해 재수사를 진행했는데, A씨가 이 과정에 관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당시 조사본부 책임자였던 박 전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는 지난 2일 피의자 신분으로 공수처 소환조사를 받았다.

공수처는 최근 해병대 관계자들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하는 과정에서 한 해병대 간부로부터 ‘해병대수사단의 조사결과를 보고받은 VIP가 격노했다는 이야기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서 들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또 김 사령관의 휴대전화에서 자신의 참모와 통화하며 윤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취지로 언급하는 내용이 담긴 녹음파일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정훈 전 수사단장은 김 사령관으로부터 ‘VIP(윤석열 대통령) 격노설’을 들었다며 윤 대통령의 격노가 국방부와 대통령실이 수사 외압에 나선 배경이라 주장해왔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다른 해병대 간부의 증언과 물증까지 나온 것이다.

공수처는 지난 21일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 사령관과 박 전 단장을 나란히 소환해 의혹의 발단인 ‘VIP 격노설’의 진위 등을 집중 조사했다.

박 전 단장의 주장과 달리 김 사령관은 VIP 자체를 언급한 적이 없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고 한다. 이에 공수처는 박 전 단장과의 대질신문을 시도했으나 김 사령관측의 거부로 성사되지 않았다. 대질신문에 적극적으로 응한 박 전 단장과 달리 김 사령관은 “대질하면 조사실에서 나가겠다”며 강하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가 박 전 단장 외에 해병대 간부로부터 ‘VIP 격노설’ 관련 진술을 받고 이를 뒷받침하는 녹음파일까지 확보한 만큼 조만간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 이종섭 전 장관 등 윗선으로 수사를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오 처장은 22일 취임식에서 “법은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고 하여 그 편을 들지 않는다”며 “고관대작이라고 하여 법을 피할 수 없다”고 밝혔다. 채 상병 수사외압 의혹 등 공수처가 맡고 있는 사건을 성역없이 수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됐다.

그는 취임식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공수처는 살아있는 권력, 고위공직자에 의해 벌어지는 범죄에 대한 수사 권능을 가진 아주 중요한 국가 독립기관”이라며 “국민의 기대에 부끄럽지 않게 절치부심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선 “보고는 못 받았다”며 “수사진과 협의해 수사에 차질이 없도록 열심히 그 사건에 매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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