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수신행위로 한 계약 “유효”
대법 “단속규정에 불과”
현행법상 금지되는 유사수신행위로 체결된 계약(투자·배당 등)의 효력을 일률적으로 무효로 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유사수신행위 관련 법 조항이 ‘단속규정’에 불과해 사법상 계약 효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유사수신행위로 체결된 투자약정을 일률적으로 무효라고 해석할 경우 유사수신행위자에게 이익을 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대부업체 A사의 회생관리인이 B씨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27일 밝혔다.
A사는 2018년 6월 29일 B씨와 투자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내용은 B씨가 3000만원을 A사에 투자하고 A사는 약정된 기일에 법률상 세금·공과금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지급하는 것으로, 계약금에 대한 이율은 20%인 600만원이었다.
A사는 계약 체결 당일부터 2019년 7월 1일까지 B씨에게 투자원금 및 배당금으로 3580만2000원을 지급했다. 이후 유사수신행위의규제에관한법률(유사수신행위법) 위반으로 기소된 A사 경영자 부부가 기소돼 유죄판결을 선고받았고, 2021년 8월 A사는 회생절차에 들어갔다.
이에 A사 회생관리인은 2022년 9월 B씨의 투자계약이 유사수신행위법 제3조에 위반돼 사법상 무효라고 주장하며 B씨가 A사로부터 받은 금액 중 투자원금과 이에 대한 법정이율 연 5%를 초과하는 금액, 429만3781원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의 쟁점은 ‘누구든지 유사수신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유사수신행위법 3조의 법적 성격이었다. 이 조항이 불법 행위를 처벌하고 나아가 그 효력까지 무효로 하는 ‘효력 규정’이라고 해석할 경우, B씨의 투자 계약은 무효이므로 배당금을 돌려줘야 한다. 반면 3조를 불법 행위를 처벌하되 그 효력은 인정하는 ‘단속 규정’으로 본다면 B씨의 계약 자체는 유효해 돈을 돌려줄 필요가 없다. 1심과 2심 법원은 A사측의 청구를 기각했다. A사측이 불복했으나 대법원의 판단도 마찬가지였다.
대법원은 유사수신행위법 3조를 단속 규정으로 해석하고, 이에 따라 맺어진 계약은 효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유사수신행위법 3조를 효력규정으로 봐 이를 위반한 법률 행위를 일률적으로 무효로 보는 것은 선의의 거래 상대방을 오히려 불리하게 함으로써 ‘선량한 거래자를 보호’하기 위한 입법 취지에 실질적으로 반할 수 있고, 계약의 유효성을 신뢰한 상대방의 법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유사수신행위법의) 입법 목적은 행정적 규제나 형사처벌을 통해서도 달성할 수 있고, 유사수신행위로 체결된 계약의 사법상 효력까지 부정해야만 비로소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불법 금융업에 의한 피해가 늘고 있는 가운데 유사수신행위법 3조의 해석에 관해 대법원이 명시적 판단을 밝힌 만큼 하급심 판단의 혼란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