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결집에 야권 표 계산 ‘허탈’…결국 여론전으로
채 상병 특검법 무산 … 여권 이탈표 한계
탄핵 주장 등 여권 내 위기감, 결집 효과
민주,원 구성 압박·장외집회 등 강공 대응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 재의결이 결국 무산됐다. 재석 294명 의원 중 찬성 179표로 가결 정족수(196표)에 17표가 모자랐다. 전날까지 예상한 찬성표 185석(범야 180+여당 찬성 5)보다 6표가 줄었다. 재의결이 쉽지 않을 것으로 봤지만 민주당이 당초 계산한 여권 이탈표가 적었다는 뜻이다. 표결 직전 비상 의총에서 부결을 당론으로 채택한 국민의힘의 결집 대오가 야권 예상보다 강했다는 반증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개원과 함께 대통령 거부권에 막힌 쟁점법안의 재발의-의결 전략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22대 국회에서 범야권 의석이 늘어난다고 해도 여당 이탈표 없이는 거부권 벽 극복이 어렵기 때문에 이를 염두에 둔 여론전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상임위원장 등 원 구성에서 여권의 입지를 좁히는 한편 범야권 장외집회 등의 강공 대응이 예상된다.
민주당은 22대 국회 개원과 함께 특검법 재발의를 예고하며 총공세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29일 최고위에서 “채 상병 특검법을 22대 국회에서 당론 발의해서 신속하게 통과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면서 “(정부여당이) 특검법은 막았을지 몰라도 정권추락과 몰락은 막지 못한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28일 국회를 통과한 전세사기특별법, 민주유공자법 등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면서 “윤 대통령의 계속되는 거부권 행사는 정권 몰락만 앞당길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2대 국회는 21대 국회와는 전혀 다른 국회가 될 것”이라며 “집권여당의 몽니에 끌려다니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곡관리법 등 21대 국회에서 재의결 표결하지 못한 법안 등을 총선 결과로 얻은 압도적 의석을 바탕으로 처리하겠다는 뜻이다.
민주당은 국민 여론의 우위를 내세워 밀어붙이겠다는 태도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이라 했다’면서 “압도적 국민의 뜻을 정면으로 거역하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라고 주장했다.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의석을 확보했고, 채 상병 특검법 등에 대한 국민의 지지여론이 높다는 점을 들어 여권의 반발을 밀고 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윤종군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28일 기자들과 만나 “여당 당선자들이 총선 민심을 수용할 수 있도록 전방위적으로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수도권을 지역구로 둔 여당 의원들의 이탈을 촉구하겠다는 취지다. 오는 6월 1일에는 시민사회계와 함께 대규모 장외집회도 추진한다.
22대 국회 범야권 의석이 192석으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여당에서 8명만 이탈할 경우 재의결이 가능하다. 그러나 28일 재의결에서 나타난 여권의 결집을 고려하면 여권 이탈표에 대한 기대는 높지 않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새 국회가 시작됐다고 해서 여권내 기류가 갑자기 바뀌기는 쉽지 앟을 것”이라며 “결국 여론이 어떻게 흐르느냐에 여권 내부의 기류변화가 달려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야권 안에서 강조하고 있는 ‘탄핵 주장’ 등이 여권의 위기감을 키워 결집을 불렀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야권 안에서는 ‘탄핵 열차가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대통령 탄핵 발의를 해야 한다’ 등의 주장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명백한 위헌행위’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표는 29일 최고위에서 “대통령이 소수 국민의힘이 동의하지 않는 법안은 100% 거부하면서 그걸 무기로 쓰라고 했다”면서 ‘자신, 주변인물들의 범죄 비리 행위를 방어하기 위해 헌법이 부여한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직권남용이고 명백한 위헌행위“라고 주장했다. 22대 국회 개원과 함께 21대 국회에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던 법안 다수를 재추진하면서 이같은 주장이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국민 여론의 지지와 야권 내부의 결속력이 유지될 것인가가 1차 관건이다. 개혁신당 등은 이미 민주당의 잇단 특검 주장에 대해 비판적 입장이고, 개원 직후부터 장외집회를 잇따라 여는 것에 대한 민주당 내부의 동참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국혁신당 등의 선명한 대응과의 차별성 문제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여야의 강대강 대치의 1차 대립전선이 될 전반기 원 구성 협상에 대한 여론의 평가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 원내대표 등 협상당은 지난 13일부터 2+2 협의체를 가동하고 있으나 채 상병 특검법과 연금개혁안 처리 문제를 놓고 대치를 이어오면서 진척을 보지 못했다. 민주당은 원 구성 법정 기한인 내달 7일을 기준선으로 법사위와 운영위원장 등 11개 상임위원장을 민주당 몫으로 배정하겠다고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면 18개 상임위원장을 모두 갖는 의결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명환 기자 m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