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탁 농가에만 살처분 보상금 지급 “헌법에 어긋나”
헌재, 헌법불합치 결정 … 내년 말까지 개정
“소유주·위탁농가 ‘손실 비례’ 지급해야”
전염병 예방을 위해 돼지 등을 살처분했을 때 가축 소유권자 대신 위탁 사육 농가에 보상금을 주도록 하는 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다만 헌재는 내년 12월 31일까지만 효력을 인정하고 그 때까지 법 규정을 개정하도록 했다.
헌법재판소(이종석 재판소장)는 30일 가축전염병 예방법 제48조 제1항 제3호 단서 조항에 대해 2025년 12월 31일까지만 효력을 인정하고 그때까지 국회가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효력을 잃게 하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재판관 9명 가운데 7명이 헌법불합치, 2명이 합헌 의견을 냈다.
2018년 12월 말 개정된 가축전염병 예방법은 농가에 사료 등을 공급하며 사육을 위탁하는 축산계열화사업자가 가축의 소유주인 경우 살처분 보상금을 계약 사육(위탁 사육) 농가에 지급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래는 가축 소유자에게 일률적으로 보상금을 지급했는데, 상대적으로 약자인 위탁 사육 농가가 사육 수수료 등을 받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농가 수급권 보호 차원에서 새로운 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그러나 헌재는 “계약 사육 농가만이 가축의 살처분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완전히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교섭력의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는 개입”이라고 지적했다.
또 “양계업과 달리 양돈업을 하는 축산계열화사업자는 영세업체인 경우도 많아 계약 사육 농가보다 우월한 교섭력을 행사한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며 “농가에 사육 수수료를 전부 지급하고도 살처분 보상금을 못 받는 사례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 위헌 심판의 계기가 된 사건에서 A법인은 축산업자 신 모씨에게 살처분된 가축에 대한 사육 수수료를 전액 지급했다. 이에 신씨가 살처분 보상금 수령 권한을 A법인에 위임했으나 제3자인 신씨의 채권자들이 보상금 수급권에 대한 채권 압류 추심 명령을 받아내면서 A법인이 보상금을 받을 길이 막혔다.
헌재는 “살처분 보상금을 사업자와 사육 농가에 개인별로 지급함으로써 각자의 경제적 손실에 비례한 보상을 하는 것이 입법 기술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며 “가령 살처분 보상금 중 사육비와 생산장려금 등 농가 지급금에 상응하는 부분은 계약 사육 농가에 지급하고 나머지는 사업자에게 지급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헌재는 “가축이 가축전염병의 확산 방지를 위해 살처분된 경우 지급되는 보상금 중에는 가축의 소유자인 축산계열화사업자와 위탁사육한 계약사육농가가 각각 투입한 자본 내지 노동력 등에 따라 각자 지급받아야 할 몫이 혼재되어 있다”며 “그런데 살처분 보상금 전액을 어느 일방에게만 지급하도록 하는 형태를 취하게 되면 당해 사건에서처럼, 살처분 보상금 수급권에 대한 제3자의 채권압류·전부명령 등 예기치 못한 사정으로 상대방으로서는 보상금을 정산받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이 사건 계속적용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입법자(국회)는 2025년 12월 31일까지 살처분 보상금은 가축의 소유자인 축산화계열화사업자와 계약사육농가에게 가축의 살처분으로 인한 각자의 경제적 가치의 손실에 비례해 개인별로 지급하는 방식으로 입법을 개선하여야 하며, 그 전까지는 심판대상조항이 적용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