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총선 핵심 관전 포인트는 남북 분열
개표 1주일 앞둬 … WSJ “경제력 강한 남부, 북부 기반 모디의 힌두민족주의에 거부감”
지난달 중순 시작된 인도 총선이 내달 1일(현지시각) 최종투표에 들어간 뒤 6일 투표함을 연다. 3선에 도전하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집권당 성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모디 총리가 이끄는 인도인민당(BJP)의 정치적 기반은 인구가 많지만 경제가 뒤처진 북부지역이다. 경제가 활성화된 남부지역은 모디 총리에 대한 반감이 크다.
모디정권이 의회의석 543석 중 2/3를 넘는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면 인도 세속헌법을 바꿀 권한을 갖게 된다. 그러려면 남부에서 상당한 의석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남부지역은 단일 종교와 언어를 중심으로 인도를 재편하려는 힌두민족주의자 모디에게 오랫동안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9일 “정치적으로 강력한 북부와 경제적으로 강력한 남부 사이의 분열은 인도의 강력한 단층선”이라며 “올해 총선의 핵심 관전포인트도 남북의 지리적 분열이 자리잡고 있다”고 전했다.
모디, 2019년 총선서 남부 외면받아
남부지역은 여러 현지언어를 기반으로 한 다양하면서 독특한 정체성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남부의 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문화적 요소와 교육열, 산업육성을 위한 노력이 경제적 성공의 원동력이라고 여긴다.
남부의 많은 주민들은 모디 총리의 BJP가 이 지역에서 힘을 얻게 되면 자신들의 독립성과 정체성이 흔들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런 우려를 희석시키기 위해 모디 총리는 올해 들어서만 최소 20번 이상 남부지역을 방문했다.
지난 2019년 총선에서 BJP당은 남부 5개 주 중 3개 주에서 단 한석도 얻지 못했다. 모디 집권 10년 동안 번영하는 남부지역의 세수가 낙후된 북부지역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게다가 인구에 기반한 선거구 획정이 다가오면서 남부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의 권한이 축소될까 불안해 하고 있다. 1970년대 인구수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했던 조치가 2026년 만료된다. 남부지역 인구는 여전히 증가하고 있지만 북부보다는 느리다. 1970년 인도 총인구의 1/4을 차지하던 남부지역 인구는 현재 약 20%로 줄었다.
남부지역 주들은 모디의 BJP가 이 지역에서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하면 선거구를 북부에 유리하도록 획정해 남부를 정치적으로 미미한 지역으로 전락시킬 것을 우려하고 있다. BJP가 의회 의석의 2/3를 차지하면 선거구 획정 주도권을 가져간다.
인도 최남단 타밀나두주의 산업부장관 T.R.B. 라자는 “BJP의 선거구 재조정 계획은 인구통제에 성공한 남부에 불리하고 인구통제에 실패한 북부에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남부 주들은 또 모디 총리가 힌두교 우선주의를 관철하기 위해 모든 종교의 법적 평등을 보장하는 현행헌법을 개정할 것을 우려한다. 또 주정부가 많은 권한을 갖고 있는 교육, 카스트 기반 우대조치 프로그램 같은 사안에 대해 더 많은 통제권을 행사할 것을 우려한다.
남북 경제력 격차 갈수록 확대
남북지역 간 주요 차이점은 경제력이다. 모디 총리는 ‘메이드 인 인디아’ 캠페인 일환으로 국내 제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는 중국 대안을 찾는 글로벌 제조업체들을 유치하는 데 도움이 됐다. 많은 외국계 기업들이 남부에 둥지를 틀었다.
미국 태양광모듈 제조기업 ‘퍼스트솔라’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인도 최초의 공장부지로 남부 타밀나두주를 선택했다. 한국 현대자동차와 일본 닛산 등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타밀나두주에서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자 등 전자 대기업들도 이곳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애플의 인도 협력업체 14개 곳 중 11개 업체가 타밀나두주(7곳)를 포함한 남부 주에 위치한다.
타밀나두 등 남부지역의 하층 힌두교도들은 지난 100년 동안 카스트계급 최상위계층인 브라만에 대항한 사회정의운동을 펼쳤다. 남부 정치인들은 공교육과 의료에 투자하는 정책적 토대를 마련해 남부의 경제적 번영의 길을 닦았다.
미국 브라운대 정치학 교수이자 남아시아센터 소장인 아슈스토시 바르시니는 “그같은 역사로 남부 주민들은 힌두교 정체성을 중심으로 결집할 것을 촉구하는 모디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입장을 고수하는 단단한 요새로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WSJ는 “사회정의운동측에선 모디 총리가 주도하는 힌두민족주의가 상층 카스트 힌두가 지배하는 엄격한 계층구조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1990년대 시작된 시장개혁으로 경제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가 느슨해진 것도 남부의 경제발전을 북돋웠다. 남부의 각 주들은 보건과 교육, 인프라에 투자하고 외국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등 자체적인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독립성을 확보했다. 반면 교육받은 인력, 적절한 인프라, 각종 지원정책이 부족했던 북부의 대부분 주들은 그같은 경로를 밟지 못했다.
인도 데이터 과학자로 ‘남과 북 : 인도의 거대한 분열’ 저자인 닐라칸탄 R.S.는 “그렇기 때문에 인도 일부 주들 간의 경제적 격차는 국가 간 차이만큼이나 극명하다”고 말했다.
남부 케랄라주의 영아사망률은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북부 주 일부의 영아사망률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예멘과 비슷한 수준이다. 남부 타밀나두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 아이들보다 약 7년 더 오래 살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남부의 여성은 북부의 여성보다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질 가능성이 더 높다.
닐라칸탄은 “인도 독립 당시에는 각 주들의 발전 정도가 수렴할 것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하지만 격차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고 말했다. 외국계 기업들은 높은 교육수준, 영어를 구사하는 인력, 우수한 인프라, 친기업 정책 덕분에 남부지역에 진출하기로 결정했다고 입을 모은다. 게다가 인도 남부는 대부분 해안가에 위치해 국제무역항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반면 인도 북부는 대부분 내륙에 위치하고 있다.
인도정부에 따르면 28개 주 가운데 남부 5개 주가 국내총생산의 약 1/3을 차지한다. 인도에 있는 약 25만곳의 공장 중 최소 1/3이 남부에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타밀나두주의 스리페룸부두르는 1990년대 자동차 제조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롤스로이스와 힌두스탄 에어로노틱스가 합작투자한 항공기부품 제조사 ‘IAM’은 남부 카르나타카주의 주도 벵갈루루에 공장을 보유하고 있었다. 두번째 공장 역시 남부 타밀나두주에 지었다. 숙련된 엔지니어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IAM 대표 시니바산은 “남부지역은 수십년 동안 쌓아온 첨단제조 노하우를 바탕으로 에어버스나 보잉 같은 고객사를 위한 제트엔진 부품 생산에 필요한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며 “다른 지역에선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북부 산업화 지연이 인도경제 걸림돌
북부의 많은 지역은 여전히 제조업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북부의 주정부 대응이 느려 협력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북부지역은 여전히 농업의존도가 크다.
모디정부는 우타르프라데시주 전역에 6개의 신공항을 건설하는 등 인프라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최근 수년 동안 타밀나두주의 선례를 따라 투자설명회를 개최하고 교육 등록률도 높이는 등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결실을 맺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북부의 산업화 지연은 인도의 전반적인 성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블루칼라 노동자와 교육받은 전문가 모두 일자리를 찾아 남부로 이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남부의 많은 기업주들은 지난 10년간 모디정부의 경제정책이 남부에 상당한 좌절을 가져왔다고 말한다. 농업·자동차 부문에 사용되는 공기압축기와 펌프를 생산하는 공장을 운영하는 G. 크리티하는 타밀나두주에서 약 30년간 사업을 꾸려왔다. 사업이 번창할 수 있었던 것은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주정부 정책 덕분이었다. 하지만 2014년 모디 총리가 처음으로 총리로 선출되고 개혁을 시행한 직후 상황이 바뀌었다.
2016년 모디 총리가 자금세탁을 단속하기 위해 단행한 전면적인 화폐개혁으로 인도 지폐가치의 90%가 갑자기 사라졌다. 크리티하 공장이 의존하는 농촌경제가 무너졌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엔 원조 부족으로 크리티하의 회사가 큰 타격을 입었다. 10년 전 44명이었던 직원은 현재 25명으로 줄었다.
크리티하는 “우리는 열심히 일했고, 공장을 세웠고, 대중을 교육했다. 하지만 남부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해서 이제 중앙정부가 우리를 제한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