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갈등…중국 신규 유니콘 기업 감소
정책 변화로 IT기업 타격 … 서구와 협력 줄며 투자도 감소
한때 IT 기술 스타트업의 요람으로 자리매김했던 중국이 지정학적 긴장 등의 영향으로 그 지위를 잃을 처지에 놓였다. ‘10억달러 이상의 가치를 가진 스타트업’을 뜻하는 유니콘 기업 출현이 줄어들자 중국 정부도 경각심을 느끼고 정책 지원에 힘을 싣는 모습이다.
30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지난달 후룬연구소가 발표한 ‘2024 글로벌 유니콘 지수’를 인용해 중국이 유니콘 클러스터 규모 면에서 미국에 계속 뒤처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지수에 따르면 전세계 총 1453개 유니콘 중 미국에 700개 이상의 유니콘이 있는 데 비해 중국에는 340개밖에 없었다. 또 지난해 중국의 신규 유니콘 수는 56개로, 1년 전 74개보다 줄었다.
앞서 KPMG와 중관춘유니콘기업육성연합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평균 38억달러의 가치를 지닌 유니콘 369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전문 기업이 유니콘 기업 목록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중국은 광활한 시장과 풍부한 애플리케이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많은 유니콘을 탄생시키며 유니콘에게 비옥한 땅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2018년 이후 중국과 미국 간의 무역 전쟁, 지정학적 경쟁 심화, 서구의 기술 봉쇄 노력, 탈리스크 및 디커플링 전략으로 인해 중국 유니콘의 성장은 둔화됐다.
베이징 소재 국제 로펌 퍼킨스 코이의 파트너 변호사 제임스 짐머만은 최근 몇년간 중국의 정책 변화를 지적하며 “중국의 기술 환경은 더 이상 혁신적인 인재들에게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전에 성공한 기업의 발자취를 따르려 했던 스타트업들은 중국 정부가 “기술 기업의 야망을 짓밟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덧붙였다.
주중 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짐머만 변호사는 “중국 정부는 이 기업들을 차례로 국가 기업주의의 도구로 전락시켰다”고 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369개 중국 유니콘 기업 중 70% 이상이 국제적 배경을 가진 펀드로부터 투자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짐머만 변호사는 중국의 서방과의 관계 약화가 향후 국경 간 협력에 장애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지정학적 긴장으로 인해 중국 기업들이 전 세계에 통합되지 못하고 고립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면서 “스타트업들에게는 글로벌 통합으로 가는 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푸단대 국제문제연구소 신창 교수는 유니콘과 기술 스타트업들을 육성하던 중국과 미국 사이의 ‘공동 생태계’가 무너지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신 교수는 “미국의 전문성은 독창적인 혁신과 발명에 있고 중국은 응용과 상업화에 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협력은 상승 작용을 일으켰고 유니콘의 요람 역할을 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미국과 중국 배경을 함께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지난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반도체와 AI를 포함한 중국의 민감한 기술에 대한 미국의 투자를 줄이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국 의회는 지난해 중국 내 반도체와 AI 사업과 관련된 미국 벤처캐피털 4곳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신 교수는 디커플링 추세가 중국의 예비 유니콘에 영향을 미쳤다고 진단하며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동시에 기업 육성을 위해 더 많은 국내 벤처 자본과 자원을 활용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흐름 속에 중국은 스타트업과 기술 자급자족 추진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인내심 있는 자본’을 활용하고 있다.
지난 4월 시진핑 주석은 정치국 회의에서 신흥 산업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한 장기 자본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보다 미래 지향적인 사고방식과 높은 위험에 대한 감내력을 강조했다.
중국 관영 경제일보는 21일 사설에서 스타트업에 더 많은 인내심 있는 자본을 투입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사설은 “인내심을 가진 자본이 기술 집약적인 (중소기업) 투자를 늘리도록 유도해야 한다”면서 “중장기 자금이 조기에 투자되고, 중소기업과 실제 기술에 투자될 수 있도록 정부는 정책을 수립하고 좋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인내심 있는 자본은 수익을 무시하지 않지만, 평가 주기를 연장하고 미리 계획함으로써 스타트업의 성장 잠재력을 파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항저우에 본사를 둔 로봇 스타트업 조피아 로봇의 공동 창업자 치우위펑은 기업들에게 수익을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이 있는 자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로봇 공학) 특허가 시장에 적용되려면 갈 길이 멀다”면서 “현재 투자자들은 단기적으로 돈을 빨리 벌 수 있는 프로젝트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과학 기술 발전에 해롭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주요 펀드와 대형 투자자들이 새로운 기술에 투자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자금이 없다면 아무도 새로운 발명품을 만들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