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원전 건설기간 14년? 최근엔 20년 이상 걸려

2024-05-31 13:00:43 게재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 공개 … 2038년 원전·재생에너지 등 무탄소발전 비중 70%

정부는 원전과 태양광·풍력발전을 함께 늘려 2038년까지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전기 중 70% 이상을 ‘무탄소 전기’로 충당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38년까지 대형 원전 3기를 새로 짓고, 차세대 원전으로 개발되고 있는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도 2035년까지 투입한다. 재생에너지는 양대 축인 태양광과 풍력발전 설비를 확충해 2030년까지 현재의 3배 수준으로 늘린다.

◆전력수요전망, 중복여부 검토 필요 =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총괄위원회는 31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러한 내용의 11차 전기본 실무안(2024~2038년 적용)을 마련해 정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2년 주기로 향후 15년간 적용될 전기본을 수립한다. 장기 수급 전망을 바탕으로 발전설비를 어떻게 채워나갈지 구체적인 계획을 담는다.

실무안에 따르면 2038년 국내 최대 전력수요는 129.3GW(기가와트)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모형수요(128.9GW)와 추가수요(16.7GW)를 더한 수요에 수요관리(16.3GW)에 따른 절감분을 뺀 수치다.

모형수요는 경제성장, 기후변화 영향, 산업구조 및 인구변화 전망 등을 반영한 계량모형으로 전력수요 증가추세를 예측한 결과다.

추가수요는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등으로 향후 투자 급증이 예상되는 반도체산업, 인공지능(AI) 확산으로 증가가 예상되는 데이터센터, 산업부문을 중심으로 한 전기화 수요 등을 토대로 예측했다.

10차 전기본에서는 2036년 모형수요 125.2GW, 추가수요 10.5GW로 책정했다. 11차 전기본을 10차 전기본과 비교할 경우 모형수요는 3.7GW 증가한 반면 추가수요는 6.2GW 늘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창의융합대학 학장은 “데이터센터 등을 반영해 추가 수요를 확대 추정한 것은 바람직한 결과로 판단된다”며 “다만 모형수요에 반도체·데이터센터산업 활황에 따른 GDP 증가분이 가져오는 전력수요 증가분이 반영돼 있다. 따라서 추가 수요에서 중복 여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에너지절약 등 수요관리 뒷걸음질 = 이와 함께 수요관리가 뒷걸음질쳤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0차 전기본에서는 2036년 수요관리 목표를 17.7GW로 잡았으나 11차 전기본은 2038년 16.3GW로 도출했다. 수요반응자원(DR) 확대 뿐 아니라 에너지 신기술 도입, 에너지절약정책 등으로 인한 수요관리가 오히려 역주행했다는 분석이다.

전력공급의 경우 11차 전기본 총괄위는 적정 예비율인 22%를 적용, 2038년까지 국내에 필요한 발전설비 용량을 157.8GW로 산출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 보급계획, 10차 전기본에 따른 원전 건설계획, 노후 화력발전소 대체 등을 고려하면 2038년까지 설치가 확정된 발전소 설비용량은 147.2GW로 추산했다. 따라서 10.6GW의 발전설비가 추가로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실무안은 신재생에너지 보급 속도를 기존 10차 전기본 계획에 비해 높일 것을 정부에 권고했다. 앞선 10차 전기본은 2030년까지 태양광·풍력 설비 보급 목표를 65.8GW로 제시했는데, 11차 전기본 실무안에서는 2030년 목표를 72GW로 높여 잡았다.

10차 전기본은 적용 마지막 해인 2036년 태양광·풍력 설비 보급목표를 99.8GW로 제시했는데, 11차 실무안은 마지막 해인 2038년 목표를 115.5GW로 설정하면서 보급목표를 상향 조정했다. 2022년 기준 국내 태양광·풍력 설비용량은 23GW다. 적어도 중간시점인 2030년까지 국내 태양광·풍력발전 설비가 3배 이상으로 확충된다.

◆LNG 열병합발전 시범 입찰 실시 = 아울러 실무안에는 10차 전기본에서 확정된 노후 석탄발전소의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로 전환을 지속한다.

이중 2037~2038년 설계수명 30년이 도래하는 노후 석탄발전소 12기를 양수·수소발전 등 무탄소 전원으로 바꾸는 내용을 담았다.

불가피하게 LNG로 전환하더라도 열공급 등 공익적 사유가 명확한 경우 수소혼소 전환 조건부LNG로 제한하기로 했다.

유 학장은 “발전사가 수소·암모니아 혼소발전을 할 경우 비용이 크게 증가한다”며 “정부는 이를 어떻게 지원할지 혹은 전기요금 인상 로드맵을 어떻게 가져갈지에 대한 내용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기본 총괄위는 2038년까지 설치 확정된 설비용량(147.2GW)를 제외하고 10.6GW 규모의 발전소를 신규 건설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2031년부터 단계적 도입법을 제시했다.

먼저 2.5GW의 신규 설비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 2031~2032년에는 무탄소 발전 설비의 기술적 준비 여부가 확실치 않다고 보고 LNG를 활용한 열병합발전으로 필요한 설비를 충당한다.

현재 다수의 민간 사업자들은 LNG 열병합발전 사업 참여를 희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하반기 입찰시장을 열어 사업자를 선정하고, 우선 올해 2032년 가동될 1.1GW 물량의 시범 입찰을 실시한다.

◆신한울 4호기, 부지매입후 준공까지 31년 소요 = 1.5GW의 신규 설비가 필요한 2033~2034년은 과도기로 간주해 향후 수소혼소 방식으로의 전환을 전제로 한 LNG 열병합발전기나 100% 수소 이용 등 무탄소발전 설비를 활용하는 것으로 하되, 최종 결정은 다음 전기본에서 정하도록 했다.

2.2GW의 신규 발전 설비가 들어갈 2035~2036년에는 ‘차세대 미니 원전’인 소형모듈원전(SMR)에 0.7GW 물량을 배정했다.

마지막 2년인 2037~2038년에는 4.4GW의 신규 설비가 필요한 것으로 전망했다. 전기본 총괄위는 에너지 구성비와 경제성 등을 고려해 일반 대형 원전건설방안을 정부에 권고했다. 한국형 원자로인 APR-1400 1기의 설비용량이 1.4GW로 최대 3기까지 원전을 건설할 수 있다.

하지만 원전은 건설과 운영 경제성을 고려해 2기를 묶어 같이 짓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3기 건설은 효율성이 떨어진다.

원자력업계에 따르면 원전 2기 건립시 부지매입비까지 포함해 통상 약 10조원이 소요된다. 1기만 따로 짓는다면 66% 수준(약 6조6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한다.

또 전기본 총괄위는 대형 원전의 경우 부지 확보 기간을 포함해 건설에 167개월(13년 11개월) 소요된다고 발표했는데 정확한 검증이 요구된다.

내일신문이 1990년대 이후 부지확보를 완료한 원전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신고리 1·2호는 1997년 12월 부지매입후 1호기(2011년 2월), 2호기(2012년 7월) 준공해 각각 14년, 15년 소요됐다.

반면 2002년 5월 부지확보를 마친 신한울 1·2호기는 각각 2022년 12월, 2024년 4월 준공시까지 20년·22년이 걸렸다.

뿐만 아니라 현재 추진중인 새울 3·4호기는 부지매입부터 준공까지 각각 24년, 25년(4호기 2025년 10월 준공 목표 ), 신한울 3·4호기는 30~31년(2032~2033년 준공목표)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새울 3·4호기와 신한울 3·4호기의 부지매입시기는 각각 2000년 9월, 2002년 5월이었다. 이후 제4차 전기본(2008년)에 반영됐다.

◆송전망 확충·고준위방폐장법 함께 논의해야 = 한편 11차 전기본에 담긴 2038년 에너지원별 발전비중은 원전이 35.8%로 가장 많고 신재생이 32.9%로 뒤를 이었다. 이어 LNG 11.1%, 석탄 10.3%, 수소·암모니아 5.5%, 기타 4.6% 등이다. 수소·암모니아는 10차 전기본의 2036년 7.1%보다 후퇴했다.

전기본 총괄위가 산업통상자원부에 권고한 11차 전기본 실무안은 향후 환경영향평가, 정부 부처 간 협의, 국회 보고 등 절차를 거쳐 확정된다.

이에 대해 박진표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무탄소전원인 원전과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는 송전망(전력계통) 확충, 주민수용성 확보, 고준위방폐물처분장-해상풍력법제 정비 등 불확실한 변수에 좌우된다”며 “전력수급 불안에 대비한 백업설비를 적정한 수준에서 확보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기본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도 제기된다. 손정락 카이스트 교수는 “전기본은 과거 산업화 시대를 위해 국가적으로 수립되기 시작했다”며 “하지만 지금처럼 재생에너지 비중이 늘어나고, 민간의 참여가 확대되면 향후 계속 전기본 수립이 필요할지 진지하게 논의해볼 때”라고 제안했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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