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일본기업주식 매수 타이밍일까

2024-06-03 13:00:01 게재

올해 강력한 증시랠리로 글로벌 투자자들 관심 … FT “지속력 여부엔 의견 엇갈려”

올해 2월 말 일본 최대 증권사 노무라증권은 도쿄 금융가의 중심부에 있는 본사로 기자들을 초대하는 이례적인 이벤트를 벌였다. 평소 주식거래소 내부에 외부인 출입은 엄격히 금지된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일본 닛케이225 평균지수가 1월부터 강력한 랠리를 이어가던 때였다. 닛케이지수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주식거품이 정점에 달했던 1989년의 사상최고점을 돌파하려던 참이었다. 결국 사상최고치 기록이 경신되자 트레이더들은 박수를 보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일 “닛케이지수가 4만포인트를 돌파한 것은 수년간의 개혁과 부활을 약속한 일본이 다시 돌아왔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도요타와 소니, 도쿄일렉트론 소프트뱅크 유니클로 등 주요 기업을 가진 일본은 마침내 ‘잃어버린 수십년’의 경제침체, 물가하락, 제로 임금성장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3월 말에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이어지면서 도쿄 상장주식의 시가총액이 처음으로 1000조엔을 돌파했다. 한 펀드매니저는 FT에 “지난 30여년 동안 글로벌 투자는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에 집중돼 있었다. 이제 가장 큰 게임은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기술주 놓친 이에겐 완벽한 시장”

일본 주식시장의 부활은 분명 매력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엔화가치의 급격한 하락으로 올해 외국인 주식투자자들이 얻은 달러 또는 유로 표시 수익의 상당부분이 사라졌다. 때문에 아직 완전한 공감대를 얻지는 못하고 있다.

오랫동안 일본주식에 투자해 온 영국 시장정보기업 ‘펠햄 스미더스 어소시에이츠’는 “일본은 미국 기술주에서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는 투자자에게는 완벽한 시장”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엔비디아에 투자하고 싶었던 투자자들을 위해 칩 설계업체 Arm의 소유주 소프트뱅크그룹부터 세계 최대 산업용 AI 플랫폼을 제공하는 히타치에 이르기까지 50개 이상의 일본 AI 관련 주식을 꼽았다. 펠햄은 “나스닥 종합지수에 지불하는 가치의 절반 정도에 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글로벌자산운용사 ‘슈로더’의 스콧 맥레넌은 신중한 입장이다. 그는 최근 한 프레젠테이션에서 “일본시장은 여전히 매우 흥미로운 시점에 있지만, 지속적인 강세를 보인 후 이제 소화기에 접어들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다년간의 관점에서 일본시장이 매우 매력적일지라도 지나치게 낙관적인 태도는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맥레넌의 입장이 현재로선 널리 공유되고 있다. 3개월 전 사상최고치를 돌파한 닛케이225지수는 이후 횡보하고 있다. 도쿄증시에 상장된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토픽스지수는 올해 엔화 기준 15% 상승했지만, 연초의 활력을 많이 잃었다.

일본기업들은 자기자본수익률(ROE)을 높이고 자본비용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골드만삭스 전략가 브루스 커크에 따르면 지난 회계연도 일본기업들의 자사주매입 발표는 사상 처음으로 10조엔을 넘어섰다. 올해 4월엔 사상 최대규모인 1조2000억엔의 자사주매입이 발표됐다.

FT는 “올해 1월 ‘소액투자 비과세제도(NISA)’가 확대도입되면서 일본가계가 현재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는 7조달러 중 일부를 주식시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기대감이 형성된 것이 그 배경”이라고 짚었다.

이른바 ‘와타나베 부인’이라고 불리는 일본인들은 일반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데, 디플레이션으로 그같은 성향이 더 강해졌다. 물가가 정체되거나 하락하는 시기에는 더 높은 저축수익을 위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 이러한 현금과 예금의 비축은 가계 총금융자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전세계 평균 28.6%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다.

2023년 6월 말 기준 일본의 가계금융자산은 2100조엔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주식시장으로 유입된 자금이 거의 없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제 일본정부와 도쿄증권거래소는 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계 보유 현금 유입 기대감 커져

증권사들은 일본 국내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투자자들의 경계심을 완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모간스탠리MUFG증권, 홍콩계 증권사 CLSA는 지난달 말 도쿄에서 각각 투자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들 컨퍼런스에는 전세계 약 1500명의 펀드매니저가 모였다. 그중에는 중동 국부펀드, 캐나다와 중남미의 연기금, 중국·인도·동남아시아의 막대한 부를 대표하는 패밀리오피스가 포함됐다.

이 자리에 참석한 대형 글로벌펀드의 한 펀드매니저는 “때가 무르익었다. 많은 투자자와 분석가들이 일본기업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변화에 집중하고 있다”며 “도쿄증권거래소가 기업들에게 주주지분을 더 잘 관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든, 정부가 기업통합을 더 쉽게 만드는 것이든, 엘리엇이나 밸류액트 같은 대형 행동주의펀드들이 상황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든 분명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정말 중요한 요인은 거시적인 요인이며, 그 배경은 그 어느 때보다 낙관적”이라며 “인플레이션과 임금상승률, 이자율이 모두 미미했던 제로 환경에서 3가지가 모두 상승하는 세계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투자할 만한 큰 변화”라고 말했다.

모간스탠리 주최 컨퍼런스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등장으로 시작됐다. 기시다 총리는 “일본이 25년 동안 지속된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났으며, 물가가 상승하기 시작하면 가계와 기관투자자들은 인플레이션에 대비해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는 압박을 느낄 것”이라며 “일본은 새로운 성장 중심의 경제로 전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선순환 경제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선도적인 자산운용 국가 건설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과정이 진행되면서 ‘와타나베 부인’인 일본가계가 도쿄 주식에 더 적극적으로 투자하게 되면 시장 전체의 밸류에이션이 상승할 수 있다. 모간스탠리는 현재 17배인 토픽스지수의 주가수익비율(PER)이 2030년 말 20배까지, 강세장에서는 22배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며칠 뒤 열린 CSLA 컨퍼런스에서 이 회사의 일본전략가 니콜라스 스미스는 “지난 30년 동안 일본증시는 크고 작은 랠리를 보였다. 종종 시장개혁에 대한 이야기나 가계, 기업 및 경제 전반의 활동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에 의해 주도됐다. 하지만 이러한 랠리는 단기간에 끝났고 많은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입었다”며 “그러나 이번엔 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이 돌아왔고, 일본은행이 올해 10월 이전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올해 임금인상률은 33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고, 일본의 모든 산업부문에서 노동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인상률이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일본의 투자신탁과 연기금, 보험사는 포트폴리오의 26.9%, 9.1%, 6.1%를 각각 주식으로 보유하고 있다. 이는 미국 투자신탁과 연기금, 보험사의 주식보유 비중(61%, 28.1%, 11.1%)에 비해 크게 낮다. 스미스는 “이는 일본의 기관·개인투자자들이 아직 인식하지 못하는 잠재력”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수십년 동안 토픽스 주식의 12개월 선행 주당순이익(엔화 기준)은 미국과 독일 중국 및 MSCI 신흥시장지수의 동종 종목을 능가하는 성과를 거뒀다. 스미스는 일본기업들의 이익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미국 10년만기 국채수익률, 달러-엔 환율 또는 일본 산업생산보다는 세계 산업생산 및 세계무역과 압도적인 상관관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형-중소형 기업 편차 크다”

하지만 그의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들조차 상장기업들 간 질적 편차가 커 일본시장을 공략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다.

영국 ‘제너애셋매니지먼트’ 설립자이자 일본시장 베테랑인 제임스 설터는 “현재 시점에서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국면은 지났다”며 “문제는 일본증시가 양분돼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도요타처럼 주주를 위해 많은 일을 하는 대형주기업과 시가총액 20억달러 미만의 많은 기업들 사이에는 매우 뚜렷한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한해 동안 가장 실적이 좋았던 일본주식은 미쓰비시와 미쓰이, 이토추, 마루베니, 스미토모 등 일본의 5대 대형기업이었다. 워렌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가 각 종목의 최대 주주가 됐다. 비록 5개 종목으로 제한됐지만 버크셔의 첫 일본투자는 일본시장에 대한 큰 지지로 널리 알려졌고 여전히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설터는 “1년 반을 되돌아보면 버핏 이후 자동차 제조업체, 도쿄일렉트론 같은 AI 관련 기술주를 매수했다면 원하는 성과를 얻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기업 스펙트럼의 더 아래로 내려가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주주수익률은 좋았을 수 있지만 성장전망은 여전히 보수적”이라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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