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한국 보험사 IFRS17 정착 어려운 이유
지난해 보험회사들은 새롭게 도입된 회계기준 IFRS17 덕에 역대급 실적을 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3년 생명보험사의 당기순이익은 전년 대비 37.6% 늘었고 손해보험사는 전년 대비 50.9%나 뛰어올랐다. 2022년에 생보사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6.0% 줄고, 손보사는 26.6% 증가한 것에 비하면 엄청난 증가폭이었다.
다른 해에 비해 지난해에 유독 보험 판매건수가 급증한 것도 아니고, 손해율이 확연하게 개선된 것도 아니었는데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은 다름 아닌 새로운 회계기준 IFRS17 때문이었다.
보험부채를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하는 IFRS17은 ‘원칙 중심’의 회계로, 보험회사는 해지율·할인율·위험률 등의 계리적 가정을 ‘자율’로 정할 수 있다.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이 나오면서 보험사들에게 주어진 계리적 가정의 ‘자율’이 ‘실적 부풀리기’에 활용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생겨나고 있다. 올해 1분기 실적이 발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도 ‘고무줄 회계’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너무나 달라진 성적표를 보고 의아했던 것은 기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IFRS17 도입 1년 만에 그 취지인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보험의 패러다임이 바뀐 것일까. 그렇게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보험업계에서조차 “도대체 실질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의문을 표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글로벌 스탠더드로 받아들여지는 새 국제회계기준이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순탄하게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글로벌, 특히 IFRS를 적용하고 있는 유럽 보험사와 한국 보험사의 상품 포트폴리오가 너무 다르다는 데 있다.
생명보험의 경우 유럽 보험사들은 연금보험 등 저축성보험의 비중이 보장성보험보다 훨씬 높지만 한국 보험사는 그렇지 않다. 국내 생보사의 수입보험료 중 보장성보험의 비중은 2017년 35.6%였는데 2024년 1분기 47.3%까지 늘었다.
보장성보험이 IFRS17의 수익성 지표인 보험계약서비스마진(CSM)을 높이는 데 유리하기 때문에 최근 몇년간 생보사들은 보장성보험 판매를 더 늘렸다.
이 보장성보험이 비갱신형에 장기상품일 경우 시가 평가를 위한 계리적 가정이 수십년에 걸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수치 변동폭이 커지게 된다. 반대로 보험계약이 1년짜리 단기라면 편차가 확대될 계제가 없다.
손보사도 마찬가지다. 유럽은 단기 형태의 일반보험 중심 시장인 반면 국내 손보사는 ‘인보험’으로 불리는 장기보험 비중이 원수보험료의 절반을 넘는다. 보험계약기간이 길어질수록 계리적 가정으로 인한 편차는 더욱 커진다.
우리 보험업계가 유럽과 다른 포트폴리오를 가진 이상 IFRS17 정착에 따른 진통은 한동안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소원 재정금융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