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직권남용’ 처벌 조항 “합헌”
헌재 “문헌 자체로 의미 명백”
국정원법 심판 청구는 각하 결정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낸 공무원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처벌 형법 규정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헌법재판소가 18년 만에 재확인했다.
헌법재판소(이종석 재판소장)는 우병우 전 수석 등이 형법 123조 등 관련 조항에 대해 제기한 헌법소원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고 4일 밝혔다.
헌재는 또 국가정보원 직원들의 직권 남용을 금지하고, 이를 어길 시 처벌하도록 규정한 구 국가정보원법 11조 1항과 19조 1항 등에 대한 헌법소원에 대해서는 각하했다.
심판대상 규정인 형법 123조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우 전 수석은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 직원들에게 이석수 전 대통령 직속 특별감찰관과 김진선 전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의 정보를 수집·보고하도록 해 직권을 남용한 혐의로 재판받고 징역 1년이 확정됐다.
그는 처벌의 근거가 된 형법 123조가 지나치게 모호해 어떤 범위까지 불법인지 예측할 수 없으므로 헌법상 명확성 원칙에 어긋나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명확성 원칙은 누구든지 어떤 행위를 하면 어느 정도 수준으로 처벌받는지 알 수 있도록 법률이 분명한 용어로 정해져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헌재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에 관한 헌법소원 총 4건을 심리한 뒤 이 죄가 헌법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직권의 남용’이란 ‘직무상 권한을 함부로 쓰거나 본래의 목적으로부터 벗어나 부당하게 사용하는 것’을, ‘의무 없는 일’이란 ‘법규범이 의무로 규정하고 있지 않은 일’을 뜻함이 분명하다고 봤다.
아울러 범행의 객체가 되는 ‘사람’에 대해서도 단지 일반인뿐만 아니라 공무원까지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때’의 범위에 일반 사인에게 법령상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경우 뿐만 아니라, 공무원에게 정해진 직무집행의 원칙, 기준과 절차를 위반해 법령상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경우도 해당할 수 있음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헌재는 해당 조항이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에 대해서도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는 그 비난이 공무원 개인에 대해서만 그치지 않고, 국가작용 전반에 대한 일반 국민의 불신을 초래해 국가기능의 적정한 행사를 위태롭게 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처벌의 필요성이 크다”고 했다.
헌재는 2006년에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가 명확성 원칙을 어기지 않았으므로 합헌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아울러 헌재는 국정원법 조항에 대한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다며 각하 결정을 내렸다.
구 국가정보원법 11조 1항은 국정원장과 직원들이 직권을 남용하여 법률에 따른 절차를 거치지 아니하고 사람을 체포 또는 감금하거나 다른 기관·단체 또는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 행사를 방해해선 안 된다고 규정했다. 19조 1항은 이를 어길시 7년 이하의 징역과 7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정했다.
재판부는 “국정원법 조항에 대해서는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이나, 이에 대한 법원의 기각 또는 각하 결정이 없었다”며 “법원은 불고불리의 원칙에 따라 이 사건 국정원법 조항이 당해 사건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에 대해 아무런 이유를 설시하지 않고 기각했다”고 설명했다.
불고불리의 원칙은 현행법상 검사의 공소제기가 없으면 법원은 심판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그러면서 “이 사건 국정원법 조항이 묵시적으로나마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의 대상으로 판단됐다고 볼 수도 없어 국정원법 조항에 대한 우씨의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다”고 부연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