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하락 베팅’ 공매도, 되레 멸종 위기
블룸버그 “고금리 거스르는 증시, 공매도 규제, 집단저항 개미투자자 등에 사면초가”
‘공매도 제왕’으로 불렸던 짐 차노스는 자본조달에 실패한 후 자신의 헤지펀드를 폐쇄했다. 테슬라 공매도로 유명한 카슨 블록의 회사는 처음으로 롱(매수) 전용 펀드를 출시했다. 미 공매도 전문 헤지펀드 ‘시트론리서치’ 설립자 앤드류 레프트는 공매도를 ‘죽어가는 동물’이라고 불렀다.
월가 공매도 투자자들이 사면초가에 몰렸다는 분석이다. 블룸버그통신은 4일(현지시각) “주가하락을 노리고 주식을 빌려 팔아 이익을 얻는 공매도는 여러 전선에서 타격을 입은 뒤 후퇴하고 있다”며 “중력을 거스르는 강세장, 지속되는 규제 위협, 공매도세력에 집단저항하는 개미투자자들 때문”이라고 전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S&P500 기업에 대한 공매도 수량은 20여년 만에 최저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헤지펀드리서치(HFR)’에 따르면 숏(매도) 편향 펀드자산은 2008년 78억달러에서 현재 46억달러로 급감했다. 반면 같은 기간 전체 주식 헤지펀드 규모는 3배 가까이 늘었다.
기업의 미공개 결함을 찾아내 베팅하는 ‘블록 앤 레프트’ 같은 행동주의 캠페인은 시작 10년 만인 2022년 가장 저조했다. 지난해 소폭 반등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명인사들이 잇달아 공매도 활동을 중단하거나 업계를 떠났다.
엔론의 파산을 불러온 것으로 유명한 전설적인 공매도 투자자 짐 차노스는 “공매도 펀드는 점점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투자를 원치 않았다”며 “기관투자자들은 공매도에서 수익이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차노스는 40년 가까이 이끌어온 헤지펀드를 폐쇄하고 패밀리오피스로 전환했다. 2008년 60억달러를 넘었던 자산이 2억달러 미만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간접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호불호 극명한 공매도 투자
공매도 투자에 대한 호불호는 극명하다. 일부는 독일 와이어카드 AG 등 기업의 비리스캔들을 폭로한다며 환호한다. 다른 일부는 일반투자자에게 피해를 주고 시장혼란을 가중시킨다며 비난한다.
HFR이 산출하는 매도 편향 헤지펀드 지수의 구성종목은 2008년 54개에 달했지만 현재는 14개로 축소됐다. 막대한 손실로 자금유출이 이어지면서다.
상승추세 시장에서 공매도는 고전하기 마련이다. 지난 10년 간 S&P500 시가총액은 약 30조달러 증가해 몸집을 2배 이상 늘렸다. 초저금리 시대와 최근 인공지능(AI) 열풍에 힘입었다.
JP모간체이스 전략가 니콜라스 파니기르초글루는 “증시의 엄청난 확장은 매도포지션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든다”며 “공매도가 반드시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증시상승세로 공매도의 약세논리가 실현되는 데 훨씬 더 오랜 기간이 걸릴 수 있다. 실현기간 동안 공매도 투자자는 빌려 판 주식에 대한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S&P500 기업에 대한 공매도 미상환 잔고율(공매도된 주식과 유통주식 간 비율)은 현재 약 1.7%로, 2001년 최저점 1.5%를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하지만 증시활황세는 공매도가 직면한 수많은 도전 중 하나에 불과하다. 2021년 많은 공매도 세력이 잠재적인 시장조작혐의로 미국 법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조사를 받았다. 아직 기소된 사례는 없다. 하지만 SEC는 지난해 특정주식에 대한 헤지펀드와 기타 대형투자자들의 공매도 포지션을 매월 보고하도록 규정을 확정해 공매도업계에 대한 감시를 강화했다.
이는 주가하락을 통해 차익을 노리는 공매도 투자자들에 대한 광범위한 의혹을 공식적으로 확인해준 조치다. 이들은 오랫동안 공매도 대상 기업과 해당 주식 투자자, 금융권의 분노를 불러일으켜 왔다. 뉴욕증권거래소 전 대표는 공매도 세력을 “역겹다” “미국의 이익에 반한다”며 강력 비난하기도 했다.
미 법무부 조사를 받고 있는 시트론리서치 설립자 레프트는 “공매도는 안좋은 사업”이라며 “대상 기업으로부터, 잠재적으로는 미 정부로부터 끊임없이 소송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에 대한 조사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는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미국 비디오게임 소매기업 ‘게임스탑’에 대한 공매도를 주도하다 이에 반발한 개미투자자들의 집단 매수운동으로 큰 손해를 입었다. 게임스탑은 개인투자자들이 몰려들어 급등하는 주식을 의미하는 ‘밈주식’의 사례가 됐다.
공매도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본 것은 물론 시장을 교란하는 ‘악당’으로 묘사되는 등 곤욕을 겪었다. 공매도 제왕 차노스는 “개인투자자들이 별다른 가치가 없는 주식을 대거 사들이면서 공매도를 비난하는 것은 정말 말이 안된다”며 “게임스탑 사태로 진짜 피해를 본 것은 공매도였다”고 말했다.
레프트는 “밈주식을 둘러싼 상황은 시장에 게임의 요소가 개입되는 ‘게임화’ 현상을 보여준다. 이로 인해 공매도 산업 전체가 약화됐다”며 “사람들은 게임스탑 사태 이후 다양한 이유로 주가가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개미투자자들이 주도하는 게임화 현상은 공매도 활동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딜리전트 마켓인텔리전스에 따르면 2015년 280건에 달했던 공매도 캠페인이 지난해 110건에 그쳤다.
공매도 유입 신규투자 점점 줄어
공매도 투자자들이 신규투자를 받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10여년 공매도 전문 헤지펀드를 운용하던 러셀 클락은 2021년 말 펀드를 해지했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기업에 매도포지션을 내던 러셀 클락의 ‘RC글로벌펀드’ 자산은 2018년 약 17억달러에서 2021년 2억달러로 급감했다. 그는 “대형투자자들이 S&P500 기업주식을 매수해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면 굳이 헤지펀드의 숏 편향에 투자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노스는 현재의 공매도 침체가 닷컴버블이 형성될 때와 사이클과 비슷하다고 본다. 문제는 이같은 침체기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현재의 침체기가 지난 15년 동안 지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매도 비중이 가장 높은 골드만삭스 주식바스켓에 속한 기업들은 같은 기간 연평균 9%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반면 HFR의 매도편향 지수는 이 기간 동안 매년 평균 10% 이상 하락했다.
차노스는 “침체 주기가 길어질수록 공매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선호도가 떨어지는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이는 일반적으로 많은 돈을 벌기 직전의 상황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끊임없이 상승하는 시장은 고평가된 기업을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부실하게 운영되거나 때로는 사기성향이 짙은 기업의 진면목을 가려준다. 공매도 투자자들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기업들이다.
올해 공매도 활동이 약간 늘었다는 지표도 있다. 데이터분석기업 ‘S3파트너스’에 따르면 올해 미국 내 공매도 잔고는 전년 대비 760억달러 증가했고, 이 가운데 약 절반은 신규 공매도다. 또 다른 데이터분석기업 ‘브레이크아웃포인트’에 따르면 올해 1~4월 신규 공매도는 47건이다. 연말까지 이 속도가 유지된다면 올해 총건수는 150건으로, 전년 대비 15%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기업 설립자 이반 코소빅은 “스팩(기업인수목적회사), 미국 내 중국 기업공개(IPO), ESG에 초점을 맞춘 투자가 모두 행동주의 공매도에게 ‘특별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세계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수십년 동안 볼 수 없었던 수준으로 인상했지만, 증시는 일반적으로 줄곧 상승세를 보였기 때문에 공매도 베팅을 오랫동안 지속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골드만삭스는 “현재 헤지펀드의 숏 베팅은 대부분 개별주식이 아닌 ETF와 선물을 통해 지수에 반대하는 것”이라며 “이는 시장방향이나 단일종목의 비효율성에 베팅하기보다는 헤지수단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게다가 아카디아 자산운용은 “주식 차입비용이 역사적 기준보다 높은 상황은 공매도 투자자에게 또 다른 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