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병원장 중 1명 자격정지, 급여 청구 못해”
1·2심 원고 승소 … “밀린 급여 지급 해야”
대법, 파기 환송 … “공동 개설도 효력 미쳐”
공동병원장 여러 명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원장 중 한사람만 의사 자격이 정지되더라도 병원 전체가 처분 기간 동안 의료·요양급여를 청구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지금껏 법원이 내려온 판결을 뒤집는 것으로 파장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의사 4명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평가원)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급여 불인정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0일 밝혔다.
소송을 낸 의사 4명은 다른 의사 A씨와 공동으로 병원을 운영했다.
그런데 A씨가 2017년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부담금(8400만원)을 거짓으로 타낸 혐의로 기소돼 벌금형이 확정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정부는 2018년 8월부터 같은해 10월까지 A씨의 의사면허 자격정지처분을 내렸다.
해당 병원 의사들은 이에 A씨를 병원에서 탈퇴한 것으로 처리해 공동 병원장 변경 신청을 했다. 또 A씨의 자격정지 기간에 해당하는 2018년 8월 1일부터 같은해 9월 3일까지 기간의 요양·의료급여 약 6억원을 평가원에 청구했다.
평가원은 이들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의료법에 따라 의사 자격이 정지된 A씨가 공동 병원장으로 등록된 기간 동안 급여를 청구할 자격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의료법 66조 3항은 의료기관 개설자가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경우 그 기간 중 의료기관은 의료업을 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다.
A씨를 제외한 나머지 공동 병원장들은 자신들이 한 의료 행위에 대해서도 급여를 주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며 불복해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은 공동 병원장들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A씨를 제외한 나머지 공동개설자인 원고들이 적법한 자격과 면허를 가진 의사로 필요한 적정한 인력·시설·장비 등을 유지한 채 환자의 치료에 적합한 요양·의료급여를 제공한 이상 급여비용을 지급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도 “의료법은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경우 의료업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병원의 공동개설자들에 대해 연대책임을 묻기 위한 규정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의료법에서 정하고 있는 법적 효과는 의료인 뿐만 아니라 의료기관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해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의료법에서 의료기관에 대한 제재 요건을 개설자를 기준으로 정한 것은 진료비 청구권을 행사하는 법적 주체가 의료기관 개설자이기 때문”이라며 “의료기관 개설 허가 취소, 의료기관 폐쇄, 의료업 금지 등의 효력 범위를 개설자에게 한정시키려는 취지가 아니다. 이는 다수의 의료인이 공동으로 의료기관을 개설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공동으로 개설한 의료기관에서 1인의 개설자가 진료비 거짓 청구행위로 처분을 받은 이상 그가 개설한 의료기관에 대해 의료법 제66조 제3항을 적용하는 것이 책임주의 원칙에 위반된다거나 나머지 공동개설자의 영업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지금껏 법원은 공동 병원장 중 1명의 자격이 박탈돼도 같은 병원 나머지 병원장들의 진료행위에 대한 급여비용 청구는 인정했다. 의사의 진료 행위별로 수가가 된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제재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공동 병원장 중 일부가 중대한 범죄를 저질러도 병원 운영엔 문제가 없다 보니 제재의 효과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클 전망이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