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갚아 드리겠다” 문자 “협박 아냐”

2024-06-12 13:00:28 게재

대법 “구체적 해악 고지로 보기 부족해”

2심, 징역형 집행유예 … 대법, 파기 환송

수사기관에 자신을 고소하고 엄벌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한 동료에게 보복성 내용이 담긴 문자를 보냈더라도 구체적인 해악이 명시되지 않았다면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보복협박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2일 밝혔다.

A씨는 2008년 충남의 한 대학 교수 B씨의 소개로 강사를 거쳐 교수가 됐다.

문제는 A씨가 B씨를 비롯한 동료 교수들에게 부동산 사업가를 소개해주면서 시작됐다. 사업가가 교수들로부터 2억4705만원을 분양대금으로 받았으나 이후 실제 개발이 진행되지 않으면서 형사 사건으로 비화했다.

B씨 등은 사업가를 고소하면서 A씨도 엄벌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고, A씨는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지난 3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이에 A씨는 2021년 10월 동료 교수 B씨에게 “이제 저도 인간관계를 정리하려고 한다. 정든 학교를 떠나게 되실 수도 있다. 제게 한 만큼 갚아 드리겠다. 연구실로 찾아뵙겠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내 신분에 불이익을 줄 것처럼 협박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A씨가 탄원서 제출에 앙심을 품고 보복할 목적으로 B씨에게 문자를 보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A씨가 B씨에게 문제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이틀 뒤에 사업가는 대학에 B씨의 연구비 횡령 등 비리를 제보했다.

1심은 A씨가 B씨에게 우발적으로 문자를 보낸 것으로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문자 내용만으로는 피고인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해악을 가하겠다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며 “‘일시적 분노의 표시’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2심은 문자 내용이 보복 협박에 해당한다고 보고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신분상 불이익을 가하겠다는 구체적인 해악의 고지를 했다”며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내용”이라고 판단했다. A씨가 실제로 사업가를 통해 B씨의 비위를 학교에 제보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A씨가 보낸 문자 내용이 보복 협박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의 주장처럼 취중 상태에서 상당 기간 친분을 맺어왔던 피해자에게 자신의 감정들을 일시적·충동적으로 토로한 것으로 이해될 여지가 많아 보일 뿐, ‘협박의 범의’ 및 ‘보복의 목적’에 따른 ‘구체적 해악의 고지’로 보기엔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어떠한 이유나 근거도 없이 적법한 방식과 절차를 지키지 않은 채 사회통념상 용인되는 정도를 벗어나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주려는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볼 객관적 증거는 없다”고 판단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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