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인플레이션과 싸움, 마지막 구간 들어서”
“천천히 서둘러야” … 하반기 기준금리 인하 시사
정책전환 빠르면 7~8월, 늦어도 10~11월 가능성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물가와의 싸움이 막바지에 달했다며 올해 하반기 조기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국민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중앙은행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도 강조했다.
이 총재는 12일 열린 한국은행 창립 74주년 기념사에서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마지막 구간에 접어들었다”고 밝혔다. 이 총재가 지난해 1월 기준금리를 연 3.50% 수준으로 인상한 이후 1년6개월째 장기간 긴축적 통화정책을 유지하면서 인플레와 싸움이 막바지에 달했다는 표현을 쓴 것은 처음이다. 그는 또 정책결정 과정에서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강조한 것으로 알려진 ‘천천히 서두른다’는 원칙도 강조해 정책전환 필요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이 총재의 이날 발언은 최근 물가상승세 둔화에 대한 진단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통계청이 4일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기보다 2.7% 올라 4월(2.9%)에 이어 두달 연속 2%대에 머물렀다.
이 총재가 기준금리 인하를 검토할 수 있다고 한 2.3~2.4%까지는 거리가 있지만 추세적으로 하향 안정화되고 있다. 특히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을 뺀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는 2.2%까지 내려갔다.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자영업자 파산 및 부동산PF 문제 등도 고려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이날 “(통화정책방향과 관련) 너무 늦게 정책기조를 전환할 경우 내수 회복세 약화와 연체율 상승세 지속 등으로 시장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조기 정책전환에 따른 부작용도 언급했지만 확연히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식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하반기 어느 시점에 기준금리를 인하할지가 주목된다. 올해 한은 통화정책결정회의는 7월과 8월, 10월, 11월 등 모두 네차례 남겨두고 있다.
최근 유럽중앙은행(ECB)이 선제적으로 정책금리를 인하하는 등 미국 연준(Fed)과 다른 행보를 보인다는 점에서 한은이 7~8월 정책전환의 문을 닫아둔 것은 아니라는 해석도 있다. 이 총재도 “(하반기 이후)국가별 정책운영 차별화로 각국 중앙은행의 실력이 뚜렷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은 기준금리 인하시점이 빨라야 10월이라는 관측이 여전히 우세하다. 미 연준이 12일(현지시간) 통화정책을 결정하면서 내놓을 점도표 등에 따라 정책금리 인하시점이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한은이 연준에 앞서 정책을 전환하는 데 따르는 위험성을 무시하기 어렵다는 전망이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