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드러낸 우크라 평화회의 폐막

2024-06-17 13:00:09 게재

공동성명에 80개국만 서명 … 브릭스 등 글로벌사우스 국가 서명거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6일 스위스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평화회의 폐막 기자회견에서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장, 비올라 암헤르트 스위스 연방 대통령,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 가브리엘 보릭 폰트 칠레 대통령 옆에 서있다. 로이터=연합뉴스
3년째 계속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멈추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이 ‘우크라이나 평화회의’로 이어졌지만 별다른 성과없이 마무리됐다. 종전방안을 등을 논의키로 한 이번 회의에 당사국인 러시아는 물론이고 중국까지 불참하면서 일찌감치 반쪽짜리 회의로 전락할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여기에 전쟁에 중립적 입장을 보인 나라들까지 공동성명(코뮈니케)에 불참하는 등 이번 회의의 한계를 고스란히 노출한 채 마무리됐다.

스위스 연방정부는 16일(현지시간) 니드발젠주 뷔르겐슈톡에서 100여개국 대표들이 모인 가운데 이틀간 열린 우크라이나 평화회의가 83개 국가·기관이 서명한 공동성명 채택과 함께 폐회됐다고 밝혔다. 공동성명에서 참가국들은 국제법과 유엔 헌장을 기반으로 우크라이나의 지속 가능한 평화 체제를 위해 건설적으로 논의했다는 사실과, 모든 국가의 영토보전과 정치적 독립을 위해 무력 사용을 자제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또 우크라이나의 원전 시설은 우크라이나의 완전한 주권적 통제 하에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정해 놓은 원칙에 따라 안전하게 운영돼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아울러 흑해와 아조우해에서 자유롭고 안전한 상업적 항해와 항구 접근이 중요하며 우크라이나의 농산물은 안전하게 제공돼야 하고, 식량안보를 어떤 식으로든 무기화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공동성명에 포함됐다. 끝으로 전쟁포로의 완전한 교환·석방과 난민이 된 우크라이나 아동·민간인 억류자의 송환을 촉구하는 내용이 실렸다.

비올라 암헤르트 스위스 대통령은 폐회 연설에서 “공동성명은 우크라이나 국민과 전쟁으로 인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분명한 신호”라며 “유엔 헌장에 근거해 우크라이나 평화를 추구하자는 데 공통된 이해를 가졌다는 점은 더욱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공동선언문에 참가국 중 10여개국이 서명하지 않아 전쟁 해결을 위한 국제적 규모의 첫 회의라는 의미가 크게 퇴색했다. 회의 참가국 중 비서명국은 브라질,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아랍에미리트(UAE) 등으로 이들의 공통점은 러시아, 중국이 주도하는 신흥 경제국 연합체 브릭스(BRICS) 소속이다. 이들은 회의 참석도 정상급이 아닌 장관급 이하 대표단을 보냈다. 브릭스 소속 국가뿐 아니라 브릭스 가입이 승인된 사우디아라비아와 가입을 추진 중이거나 관심을 표명한 인도네시아, 태국, 리비아, 바레인 역시 공동성명에 서명하지 않았다.

또 아르메니아, 멕시코, 슬로바키아와 회의 주최국이자 중립국을 표방하는 스위스, 교황청이 서명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들 비서명국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고려해 이같이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외신들은 이들 비서명국의 공통점을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신흥국과 개도국 통칭)라고 짚었다.

이번 회의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올해 1월 스위스를 방문해 공동개최를 제안하면서 성사됐다. 분쟁 중재 경험이 많은 중립국 스위스는 각국의 정상급 인사들을 끌어모아 평화 논의의 획기적 실마리를 마련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제안을 수용했다.

스위스는 기존 논의 틀이었던 우크라이나 평화 공식 국가안보보좌관 회의보다 참가국 규모를 키우는 데는 성공했다. 올해 4월 몰타에서 열렸던 4차 국가안보보좌관 회의에는 83개국이 참여했고, 이보다 더 많은 100개국 대표단이 이번 회의에 참석했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일본 등 57개국에선 정상들이 직접 회의장에 나오기로 하면서 이목을 끌 만했다.

그러나 지난 4월 전쟁 당사국인 러시아가 불참 선언하고, 중국이 뒤따라 대표단을 보내지 않기로 함에 따라 회의의 영향력과 위상이 크게 위축됐다.

러시아는 오히려 회의 개막 전날인 14일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에서 우크라이나가 군대를 철수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포기하면 휴전하고 대화에 나서겠다는 역제안을 하기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폐막식에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철수하면 즉시 협상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맞받았다. 그는 또 “중국이 갈등 해결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길 원한다”면서 “우크라이나는 중국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중국의 협력 제안을 기대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공동주최국인 스위스는 후속 회의를 기대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참여에도 열려 있다는 입장이다. 이그나지오 카시스 스위스 외무장관은 “후속 회의가 어디서 열릴지는 불분명하다”면서도 “미국 대선 이전인 11월에 열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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