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남양연구소 시설점검 근로자 ‘불법파견’
대법, ‘불법파견 불인정’ 원심 파기환송
“현대차 지휘·명령 받아 … 보전업무 담당”
현대자동차 직접 생산라인이 아닌 남양연구소에서 시설점검 등을 하는 ‘간접공정’ ‘외부공정’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불법파견이 대법원에서 인정됐다. 하급심에서 직접 생산라인 바깥 업무 하청노동자에 대한 불법파견 판단이 엇갈린 가운데 대법원이 근무형태의 실질에 대해 판단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7일 A씨 등 20명이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등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8일 밝혔다.
A씨 등은 현대자동차 연구·개발시설인 남양연구소에서 각종 장비들이 고장나지 않게 점검하고 유지·관리하는 업무를 했다. 현대자동차는 1996년부터 해당 업무를 하청업체에 외주화하고 있다. A씨 등은 현대차에 직접 지휘·감독을 받아 일하고 있다며 2015년 9월 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은 컨베이어 벨트에서 일하지 않는, 이른바 ‘간접공정’ 하청노동자들이 원청 사업에 편입됐다고 볼 수 있는지다.
1심은 현대자동차의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2부(윤종섭 부장판사)는 2018년 10월 A씨 등이 현대차로부터 지휘명령을 받는 근로자파견관계에 있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청의 상당한 지휘·명령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A씨 등은 재량에 따라 장비를 점검한 게 아니라 원청이 제공한 예방점검표에 따라 이상 유무만 점검했다”며 “예방점검표는 실질적으로 A씨 등에 대한 원청의 지시 수단으로서 기능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보전업무도 신차 연구·개발업무의 일환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시험장비, 생산설비 작동상태를 유지하고 수명을 연장해 궁극적으로 신차 연구 개발업무가 원활히 수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주된 목적”이라며 “A씨 등이 수행한 경정비 업무는 원청노동자들이 직접 수행한 수리업무와 범위가 명확하게 구분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A씨 등이 소속된 협력업체가 원청의 표준정원에 의존해 대가를 받고 신규 채용한 점 등을 근거로 독자적 결정 권한이 없었다고도 짚었다.
하지만 2심은 1심 판단을 뒤집고 합법적 도급관계라고 판단했다. 서울고법 민사1부(윤승은 부장판사)는 2019년 9월 A씨 등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A씨 등이 행한 예방점검 업무와 연구개발 업무는 명확하게 구별돼 작업량, 작업 내용 면에서 연동될 여지가 없고 대체 가능성 또한 전혀 없다”고 판단했다. 원청노동자와 함께 작업했다는 A씨측 주장에 “업무 협조 차원에서 원청노동자가 정비 업무를 일시적으로 돕거나 개인적 친분에 따라 지원한 정도로 보인다”고 선을 그었다.
예방점검표와 관련해 재판부는 “기본적 점검 사항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표준정원에 의존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일의 완성 여부를 정밀하게 산정하기 어려운 업무 특성에 기인한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같은 사실관계를 두고 원심의 법적 판단이 잘못됐다고 봤다. 재판부는 “원고들은 협력업체에 고용된 후 피고의 자동차 연구·개발시설인 남양연구소에서 피고의 지휘·명령을 받으며 피고를 위한 보전 업무에 종사했다”며 “해당 소송기간 동안 원고들과 피고는 근로자파견관계에 있었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원청은 하청노동자들에게 점검포인트, 점검기준 등이 상세히 기재된 예방점검표를 제공했고, 하청노동자들은 이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다”며 “원청 정규직과 하청노동자가 담당해야 할 업무내용을 구분해 두긴 했지만 실제로 업무 범위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아 일부 장비의 경우 함께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고, 장비 고장이 발생한 경우 정규직의 요청에 따라 수시로 공동 작업을 수행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원심 판단에는 근로자파견관계 인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파기 환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