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선거 열풍 속의 동남아시아 지도부 교체
인도네시아대선 통해 민주주의 모범국가로 부각 … 싱가포르, 경제 개방과 복원력 높이기 주목
이미 선거 지형을 흔드는 판결이나 메가톤급 변화를 예고하는 선거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5월30일 ‘성 추문 입막음’ 사건 형사 재판에서 유죄 평결을 받자 미 대선 판세는 출렁거리고 있다.
4월19일~6월1일 치러진 인도 총선에서는 모디 총리가 이끄는 인도국민당(BJP) 주도 연합이 승리함으로써 모디 총리는 3연임에 성공했다. 1947년 인도 독립 이후 3연임에 성공한 총리는 자와할랄 네루 초대 총리에 이어 두 번째다. 하지만 그가 소속된 인도국민당(BJP)은 단독 과반 확보에 실패해 민심이 모디 총리에게 ‘옐로 카드’를 던졌다는 평가다.
5월31일 실시된 남아공 선거에서는 남아공 ‘민주화의 아버지’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을 배출한 ‘아프리카 민족회의’가 과반 득표에 실패하면서 30년 단독 집권의 막이 내렸다. 또한, 6월6일~9일 실시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들이 약진하자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대선을 3년 앞두고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을 전격 발표함으로써 극우 세력의 돌풍을 차단하는 정치적 도박에 승부수를 던졌다.
◆동남아 각국 리더십 교체에 세계 촉각 = 아시아로 시계(視界)를 돌려보면 금년 들어와서 이미 대만 총통 선거, 인도네시아 대선, 우리나라 총선, 인도 총선이 실시되어 국제사회의 이목을 다시 한 번 이들 국가로 집중시켰으며 동시에 이들 국가가 처한 지정학적, 지경학적 상황을 전 세계에 적나라하게 노정시키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아시아 중에서도 동남아로 초점을 맞추어 보면, 인도네시아는 금년 2월 대선에서 프라보워(현 국방장관)후보가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함으로써 2차 결선 투표 없이 대통령 당선자로 확정되어 오는 10월 취임한다.
싱가포르의 경우 집권당 당수가 총리로 선출되는 헌정 질서에 따라 권력 승계가 이루어 졌다. 20년 집권한 리센룽 총리가 물러나고 40대의 로렌스 웡 부총리 겸 재무장관이 지난 5월 총리로 취임하면서 독립 이후 4세대 정치 지도자 시대를 열었다. 싱가포르는 내년 11월 까지는 선거를 치르도록 되어있다.
이와 달리 베트남의 경우 공산당 내 4인 최고 권력 ‘기둥’ 간의 권력 분점에 의한 집단지도 체제를 유지하면서 안정적인 통치 구조 모습을 보여 왔으나 올해 들어와 취임 1여년 밖에 되지 않은 국가주석이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전격 경질되고 국회의장도 1년 만에 교체됨으로써 통치구조의 불확실성을 노정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프라보워의 당면한 과제 = 인도네시아의 대선, 싱가포르의 투명한 권력 승계 및 베트남 지도부 절반의 전격적 교체는 이들 국가의 국제적 위상과 지정학적 중요성, 세계의 부러움을 사는 경제성과 또는 뛰어난 국가 경영 수완에 비추어, 동남아를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뿐만 아니라 지구촌 전체의 지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3대 민주주의 국가로서, 세계 4대 인구 대국으로서,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로서, 아세안 경제의 40%를 차지하는 아세안의 핵심 주도국으로서 그 비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나라다. 그리고 이번 대선을 통해 민주주의의 건재함을 다시 한번 과시하였으며 민주주의 공동체의 지구적 확산에 중요한 행위자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하였다.
다른 한편, 프라보워 당선자는 자신의 과거 전력에 비추어 집권 후 권위주의 성향을 보일지도 모른다는 국제사회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키는데 주력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동시에 프라보위 당선자는 보르네오섬 정글 지대 ‘누산타라’로 수도를 이전하는 사업을 이어가야 한다.
◆리콴유 책에 소개된 등소평과의 대화 = 싱가포르는 작은 섬나라이지만 다른 여러 나라들이 부러워하는 모범 사례로 가득 찬 나라이다. 싱가포르 각계 지도층 인사들은 이 나라를 국제사회에서 실물보다 훨씬 더 크게 보이게 하는 특출한 재능을 두루 갖추고 있다. 그 중에는 인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사례도 있다.
리콴유 전 총리는 그의 저서 ‘한 남자의 세계관(One Man’s View of the World)’ 에서 1978년 싱가포르를 방문한 중국 최고지도자 등소평과 나눈 대화를 이렇게 소개한다.
“등소평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축하한다고 말하자 자신은 무엇을 축하하느냐고 되물었다. 아름다운 도시와 정원 도시라고 말했다. 싱가포르가 무엇을 했던 중국은 더 잘 할 수 있다고 응수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중국 남부의 땅 없는 농부들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학자, 과학자 및 전문가를 두루 갖고 있어서 우리 보다 훨씬 더 잘 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꿰뚫는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1992년 등소평은 중국 지도부에 개방.개혁을 계속하도록 촉구하기 위해 광동성으로 내려갔다(남순강화). 그는 ‘세계로부터 배우고 특히 싱가포르로부터 배우고 그들보다 더 잘 하자’고 격려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말했다. 아! 그는 내가 그에게 한 말을 잊지 않았구나. 정말로 그들은 우리보다 더 잘 할 수 있다. 싱가포르에서 등소평은 어떻게 배후지와 천연자원이 없는 조그마한 섬나라가 외국 투자를 유치하고 경영 노하우와 전문 기술을 도입함으로써 인민들에게 부유한 삶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지를 직접 보았다. 그는 중국 경제를 세계에 개방할 필요가 있다고 확신하고 귀국하였다. 중국 역사의 중요한 순간이었다. 핵심적 전환점 이었다. 중국은 그 이후 과거로 뒤돌아보지 않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싱가포르 40대 웡 총리에 주목하는 이유 = 지난 달 5월15일 40대의 젊은 4세대 지도자 로렌스 웡 총리의 취임을 계기로 싱가포르의 성공 스토리가 다시 한번 세계의 조명을 받고 있다. 싱가포르의 기적은 계속될 수 있을까? 싱가포르의 운명이 젊은 총리의 손에 달려있다.
서방 세계의 정치인들은 싱가포르의 매우 높은 생활수준과 효율적인 공무원 조직을 부러워한다. 싱가포르의 1인당 GDP는 경이적인 8만8천달러나 된다. 이 나라는 1965년 독립 당시 남아공이나 요르단보다 더 가난했다.
금융 허브로서의 싱가포르의 매력은 중국의 홍콩 민주화 탄압으로 더 확산되었다. 싱가포르는 신냉전 시대에 미.중 사이에서 중립 지대가 되기를 열망한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인태지역 본부를 유치하고 있다.
그럼에도 웡 총리는 다가오는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첫째, 지정학은 파열을 야기할 수 있다. 서방과 중국 간의 완전한 디커플링은 싱가포르 경제의 10%를 축소시킬 것이다. 둘째, 이 도시국가는 급속히 고령화 되어가고 있다. 증가하는 의료 서비스 지출과 줄어드는 노동력은 경제성장을 해칠 것이다. 대답은 값싼 노동력과 숙련 외국인 둘 다 많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세째 도전은 기후변화다.
웡 총리의 우선 순위는 경제를 최대한 개방적으로 운용하는 것이다. 개방은 갑작스러운 충격과 일자리 이전으로 창조적 파괴를 가져온다. 그래서 웡 총리는 복원력을 강조한다. 싱가포르는 빈곤층을 지원하고 기술 변화로 영향을 받는 근로자들을 재훈련시키기 위해 ‘부(負)의 소득세’를 확대하고 있다. 경제 개방 플러스 복원력 제고는 싱가포르의 새로운 방식이다.
◆세계가 베트남 ‘정치 소용돌이’에 주목 = 베트남은 공산당 일당 지배 국가이지만 당총서기, 국가주석, 총리 및 국회의장 등 핵심 ‘4개 기둥’의 최고 권력을 분점하는 정치 체제를 유지함으로써 내부적으로 당내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면서 경이적 외국인 투자 유치를 통해 경제 발전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년 사이 국가주석 2명이 연이어 1년 남짓만에 사임하고 금년 초 국회의장이 교체되는 등 최고 수뇌부 개편이 전격 단행됨으로 불확실성을 노정하여 세계가 베트남을 다시 쳐다보고 있다. 세계는 왜 베트남의 정치 소용돌이에 주목하고 있을까?
우선 베트남은 동남아에서 미.중 전략 경쟁의 핵심 국가이다. 지정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국가이다. 베트남은 3000km 이상 긴 해안선을 갖고 있으며 북쪽으로 중국과 긴 육로 국경을 접하고 있다. 동시에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베트남의 중요성이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중국에서 사업 중인 다수의 외국 기업들이 중국의 대안으로 베트남으로 투자처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중국 의존도를 줄이면서 위험 분산을 하고 있다.
즉, 중국 발 위험 회피 대상 지역으로 베트남의 가치를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현재 진행 중인 베트남의 부정부패척결 운동은 사업 승인 권한을 가진 관리들을 움츠리게 하고 이들의 사업 승인을 주저하게 함으로써 투자자들의 신뢰를 손상시킬 수 있다. 외국 투자자들은 이로 인해 개혁의 시동이 꺼지지 않을까 우려한다. 작년에 베트남은 기록적인 370억달러의 외국인직접투자를 유치했다. 베트남은 동남아의 가장 뜨거운 경제로 떠오르면서 아세안 지역 경제성장을 선도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는 평화와 번영의 기반을 공고하게 해준다. 동북아의 한국과 동남아의 인도네시아는 각 지역에서 민주주의 모범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2008년 ‘발리 민주주의 포럼’을 창립하여 아.태 지역 내 민주주의 토양을 깔고 제도를 안착시키는데 힘을 합치고 있다.
이제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파트너십은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 공동체를 인.태 지역으로 확산하는데 공통의 이해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부정부패는 민주주의의 좀이며 적이다. 한국은 과거 국민권익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우리의 ‘공직자청렴지수’ 등 공직 사회 반부패 모범 사례를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아세안 국가들과 공유하면서 새로운 협력의 장을 연 적이 있다. 이들의 부패척결 의지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한국과 아세안은 금년 10월 정상회의를 계기로 협력 단계를 최고의 수준으로 격상하여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새롭게 출발할 예정이다. 이를 계기로 아세안이 부러워하는 공직사회 부패 척결을 포함하여 한국의 선정(good governance) 분야 성공 사례를 더 많이 공유하면 좋겠다.
정해문
전 태국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