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굴기’ 중국, 서방주도 학계질서 깬다

2024-06-21 13:00:03 게재

공학·소재·화학 분야 고품질 논문 크게 앞서 … 이코노미스트지 “최첨단 연구 주도”

미국과 유럽 일본이 지배하던 기존의 과학기술계 질서가 종말을 고하고 있는 걸까.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최근 특집기사에서 “과학 강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이 생물학에서 물리학까지 전세계 최첨단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과학분석회사 ‘클래리베이트’에 따르면 2003년 미국은 중국보다 20배 많은 양질의 논문을 생산했다. 2013년 미국은 중국의 약 4배에 달하는 상위급 논문을 출간했다. 하지만 2022년 논문을 대상으로 한 최근 조사에서는 중국이 미국과 유럽연합(EU) 전체를 넘어섰다.

물론 인용에 기반한 지표는 조작될 수 있다. 과학자들이 자신의 논문이 다른 연구에서 언급되는 횟수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은 2023년 권위 있는 저널에 실린 논문의 피인용 횟수를 집계하는 ‘네이처 지수’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과학연구 성과량에 대한 ‘라이덴 랭킹’에 따르면 현재 세계 상위 10위 안에 드는 중국 대학 또는 기관은 6곳이다. 네이처 지수로 따지면 10곳 중 7곳이 중국에 있다. 상하이교통대와 저장대, 베이징대는 케임브리지대와 하버드대, 취리히연방공과대와 같은 반열에 드는 것으로 평가된다. 영국 옥스퍼드대 고등교육학 교수인 사이먼 마긴슨은 “칭화대는 이제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대학”이라며 “놀랍다. 1세대 만에 이룬 일”이라고 말했다.

응용연구는 중국의 강점이다. 예를 들어 중국은 태양광을 전기로 변환하는 데 쓰이는 기존 실리콘셀보다 훨씬 더 효율적일 수 있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패널에 관한 논문을 다수 발표하고 있다. 중국 화학자들은 특수 멤브레인을 사용, 바닷물에서 수소를 추출해 순수한 물을 분리한 다음 전기분해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다. 지난해 5월 중국 과학자들은 부유식 수소농장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현재 다른 어떤 나라보다 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독창적인 발명이 아니라 설계를 조금씩 수정한 것들이다. 하지만 중국의 강력한 산업기반과 저렴한 에너지 덕분에 소재와 같은 분야에서의 물리적 혁신을 대규모로 빠르게 생산할 수 있다. 영국 신소재 기업 ‘머티리얼스 넥서스’ CEO 조나단 빈은 “바로 이 점이 중국이 서방국가들에 비해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네이처 지수에 따르면 중국은 물리, 화학, 지구 및 환경과학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여전히 일반생물학과 의학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마긴슨 교수는 “현대 들어 공학은 중국이 가장 높은 가치를 매기는 학문”이라며 “한편으로는 군사기술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론 국가를 발전시키는 핵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응용연구에 강점 가진 중국

중국과학의 재편은 연구자금 과학장비 인재 3가지 영역에 집중하면서 이뤄졌다. 중국의 연구개발(R&D) 지출은 2000년 이후 16배 늘었다. 하지만 미국과의 격차는 여전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중국 R&D 지출(구매력평가 기준)은 6680억달러, 미국은 8060억달러다.

하지만 대학과 정부기관의 R&D 지출만 놓고 보면 중국이 앞선다. 미국은 기초연구에 약 50%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지만 중국은 응용연구와 실험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과학기술에 대한 청사진은 중국공산당의 5개년 개발계획에 포함된다. 2021년에 발표된 현재의 5개년 계획은 △양자기술 △인공지능(AI) △반도체 △신경과학 △유전학·생명공학 △재생의학 △심우주 △심해 △지구극지방 등 ‘프론티어영역’ 탐사연구를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세계적 수준의 대학과 정부기관을 설립하는 것도 과학발전 계획의 일부다. ‘프로젝트 211’ ‘985 프로그램’ ‘차이나 나인리그’ 같은 이니셔티브에 선정된 연구소는 연구역량을 개발할 수 있는 자금을 지원받는다. 각 대학은 영향력 있는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한 경우 해당 연구자에게 평균 4만4000달러, 최대 16만5000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한다.

인력양성은 최우선과제다. 중국 교육부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9년까지 600만명 이상의 중국 학생들이 해외로 유학을 떠났다. 최근 수년 동안은 유학생들이 새로 습득한 기술과 지식을 가지고 귀국하고 있다. OECD 데이터에 따르면 2000년대 후반부터 중국으로 떠나는 과학자보다 중국으로 돌아오는 과학자가 더 많아졌다. 중국은 현재 미국과 EU보다 더 많은 연구원을 고용하고 있다.

이는 끌어당기는 힘뿐만 아니라 밀어내는 힘도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일하는 중국 과학자들은 최근 수년 동안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의심의 대상이 됐다. 2018년 미국은 산업계와 학계에서 중국 스파이를 뿌리 뽑기 위해 ‘중국 이니셔티브’를 출범시켰다. 중국의 ‘군-민간 융합 전략’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추방된 학생들도 많았다.

자금 장비 사람에 집중투자

중국은 과학장비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 슈퍼컴퓨터와 세계 최대 규모의 개구부 전파망원경, 지하 암흑물질 검출기,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초고에너지 우주선 검출기(최근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을 테스트하는 데 사용)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정상상태 자기장(물질의 특성을 조사)이 있다. 조만간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중성미자 검출기(질량이 가장 큰 기본 아원자 입자의 유형을 연구하는 데 사용)를 보유하게 될 전망이다.

중국 최고 연구기관의 개별연구소들은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춰가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매크로폴로’의 AI 인재 추적 데이터에 따르면, 2019년 이 분야에서 일하는 중국 학생 중 34%만 관련 대학원이나 관련 직장을 위해 중국에 머물렀다. 2022년엔 그 수치가 58%로 상승했다.

현재 중국은 전세계 AI 관련 연구논문의 약 40%를 발표한다. 미국은 약 10%, EU와 영국을 합치면 15% 정도다. 역대 가장 많이 인용된 AI 연구논문 중 하나는 이미지인식에 대해 심층신경망을 훈련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것으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소속으로 중국에서 일하는 AI 연구원들이 작성했다. 미 조지타운대 보안·신흥기술센터 AI 분석가인 재커리 아놀드는 “중국의 AI 연구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컴퓨터 비전, 로봇공학 등의 분야의 연구논문에서 중국이 상당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과학의 질적 양적 성장은 지속될 전망이다. 중국정부는 올해 과학기술 연구예산을 10% 늘렸다. 그리고 중국은 엄청난 수의 젊은 과학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2020년 중국 대학들은 미국의 7배에 달하는 140만개의 공학학위를 수여했다. 중국은 현재 학부 수준에서 미국보다 2.5배 많은 AI 연구자를 가르치고 있다. 2025년 기준 중국 대학들에서 배출하는 과학기술 분야 박사학위 졸업생수는 미국보다 거의 2배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평균적으로 중국의 논문은 인용횟수로 측정한 영향력이 미국이나 유럽의 논문보다 낮은 경향이 있다. 또 일부 소수의 일류대학은 수준이 높지만 중위권 대학은 뒤처져 있다. 오하이오주립대 과학정책 교수인 캐롤라인 와그너는 “중국은 최고 수준의 연구 역량은 뛰어나지만 연구기반은 취약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미국과 유럽은 기초연구 부문에서 여전히 선두를 지킨다. 하지만 이 분야에서도 중국의 위상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현재 임상의학 분야에서 영향력을 인정받는 논문은 미국이 중국보다 약 4배 더 많이 생산한다. 하지만 많은 분야에서 중국은 이같은 핵심연구를 인용하는 논문을 가장 많이 생산하고 있다. 이는 향후 성장을 예고하는 관심의 발전신호다.

미국 과학정보연구소 수석과학자인 조너선 애덤스는 “생물학 측면에서 중국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새로운 분야로 초점을 전환하는 중국의 능력은 매우 놀랍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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