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실선 진로변경 사고 “형사처벌 불가”
대법원 전원합의체, 종전 판례 변경
“진로변경금지는 통행금지와 달라”
운전 중 일반 도로에서 백색실선을 침범해 발생한 교통사고 가해자에 대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 혐의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004년 대법원 판례를 변경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조희대 대법원장, 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20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공소를 기각한 원심판결을 전원일치로 확정했다. 공소 기각이란 검찰의 공소가 부적법하다고 보고 소송을 끝내는 절차다.
A씨는 2021년 7월께 편도 4차로에서 승용차를 운전하던 중 1차로에서 2차로로 진로를 변경했다. 이곳은 진로 변경을 제한하는 ‘백색실선’이 설치된 곳이었지만 A씨는 이를 무시했다. 결국 2차로에서 주행하던 택시가 A씨의 차량과 충돌을 피하기 위해 급정거했고, 택시 승객이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었다.
검찰은 A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반면 A씨측은 무죄를 주장했다.
교통사고를 일으켰다고 해서 무조건 형사처벌 대상인 것은 아니다. 종합보험에 가입했다면 뺑소니 등 12대 중과실에 해당하지 않는 한 검찰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이를 종합보험 가입특례라고 한다. 그러나 운전자에게 특정한 과실이 있으면 특례조항의 조건을 만족하더라도 처벌해야 하는데, 그런 예외 중 하나가 ‘통행을 금지하는 내용의 안전표지를 위반해 운전한 경우’(교통사고처리 특례법 3조 2항 1호)다.
재판의 쟁점은 ‘진로 변경 제한’을 뜻하는 백색실선을 통행금지 표지로 볼 수 있는지다.
1심과 2심은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소를 기각하는 게 맞다고 봤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도 1·2심과 같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백색실선은 ‘통행금지를 내용으로 하는 안전표지’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이를 침범해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에 대해선 처벌특례가 적용된다”고 결론 내렸다. 이어 “이렇게 해석한다고 중대 교통사고의 발생 위험이 크게 증가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입법자의 의도를 해석했을 때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백색실선 침범을 이유로 한 업무상과실치상죄에 대해선 처벌특례가 적용되므로 자동차종합보험에 가입했던 A씨에 대한 검찰의 공소제기는 무효”라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 관계자는 “백색실선 침범 교통사고에 대해 반의사불벌죄 규정이나 종합보험 가입 특례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본 종전 판례를 변경했다”며 “입법 취지에 반해 형사처벌의 범위가 부당하게 확대되지 않도록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따라 ‘통행금지’의 의미를 엄격하게 해석했다”고 설명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