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몰래 차 몰다 사고 … 대법 “차주도 책임”
차 열쇠 관리상태·사후승낙 가능성 등 고려
지인이 몰래 차를 운행하다 사고를 냈어도 운행자 책임이 인정되면 차량 소유주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홍구 대법관)는 최근 한 보험사가 차량 소유주 A씨를 상대로 제기한 구상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게임 동호회에서 만난 지인 B씨의 집 근처에 차를 주차하고 함께 술을 마신 뒤 B씨의 집에서 잤다. B씨는 다음 날 오전 A씨가 자고 있는 틈을 타 자동차 열쇠를 몰래 가지고 나와 운전하다 행인을 치는 사고를 냈다. 피해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보험사는 A씨에게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사건의 쟁점은 지인이 허락 없이 차를 운전했을 때 차량 소유주에게도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지였다.
1심은 A씨의 책임을 인정해 두 사람이 공동으로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2심에서는 A씨의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A씨와 B씨가 상당한 양의 술을 마시고 잠에 빠졌을 것으로 짐작되므로 비록 피고 차량이 위 주거지 부근에 주차돼 있었더라도 몰래 차 열쇠를 갖고 나가 운전할 것이란 것을 예상하거나 인식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교통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A씨가 B씨의 운전을 사후에 승낙하거나 용인했을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무단운전에 이르게 된 경위와 무단운전에 걸린 시간, 자동차와 열쇠의 보관 및 관리상태, 운전자의 차량 반환의사 유무, 무단운전 후 소유자 등의 사후승낙 가능성 등에 비추어 A씨가 자동차에 대한 운행지배와 운행이익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B씨는 기분 전환을 하며 동네를 한 바퀴 돌 생각으로 이 사건 자동차를 운전했고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를 짧은 기간 동안 운전했을 뿐이므로 자동차 반환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만약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무단운행에 대해 피고가 사후에 승낙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