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크림반도 공격받자 보복 다짐

2024-06-25 13:00:02 게재

“미국 개입 의심 여지 없어” … 주러 미 대사 초치 등 강력 항의

23일 러시아 세바스토폴 나키모프 광장의 희생자들을 위한 임시 추모비에서 여성들이 꽃을 들고 헌화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가 발사한 집속탄두가 장착된 에이테큼스 미사일로 인해 어린이 2명을 포함해 4명이 사망하고 100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타스=연합뉴스
우크라이나 군이 미국산 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로 크림반도를 공격하자 러시아가 미국 개입을 주장하며 보복을 다짐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무기지원과 제재 등으로 가뜩이나 신경이 곤두선 러시아가 이번 공격을 그냥 넘길 수 없다는 분위기다.

24일(현지시간) 타스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 외교부는 전날 크림반도 세바스토폴 공습과 관련해 이날 오전 린 트레이시 주러시아 미국 대사를 초치했다고 러시아 국방부가 밝혔다.

러시아 국방부는 “세바스토폴에서 어린이를 포함해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며 “미국의 지원을 받아 무장한 우크라이나 정권의 치명적인 범죄와 관련해 외무부가 미국 대사에게 항의했다”고 설명했다.

미하일 라즈보자예프 세바스토폴 시장은 이번 공격으로 어린이 2명을 포함해 총 4명이 숨지고 153명이 다쳤다고 밝히고 이날을 애도 기간으로 선포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취재진에게 “우리는 이 사건 배후가 누구인지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며 “미국과 유럽의 언론 대변인에게 당신들의 정부가 왜 러시아 아이들을 죽이고 있는지 질문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어 “미국이 싸움에 개입해 평화롭던 러시아인들이 죽게 된다면 후과가 따르게 될 수밖에 없다”며 “이는 시간이 말해 줄 것”이라고 강력 경고했다.

이번 공격은 최근 미국이 자국 무기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를 공격할 수 있도록 허용한 이른바 '레드라인'을 변경한 뒤 일어난 것이라 러시아가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크림반도는 러시아 본토는 아니지만 군사 요충지인 데다 정치적 상징성이 큰 지역인만큼 이를 본토 공격으로 간주하고 보복의 명분으로 삼을 가능성도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세르게이 알레이닉 벨라루스 외무장관과 만나 세바스토폴 공습에 대해 “미국과 그 꼭두각시 우크라이나인들이 개입했다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공급한 무기는 인공위성 역량 등 미군의 직접적 개입 없이는 사용할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외무부도 별도 성명에서 “우크라이나 정권이 미국 지원을 받아 민간인을 대상으로 테러를 저질렀다”며 “의도적으로 정교회의 가장 중요한 기념일인 삼위일체 대축일을 노려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 전문가들은 집속탄두를 탑재한 미국 에이태큼스 미사일의 비행경로를 입력했고, (발사 당시) 미국의 글로벌 호크 무인 정찰기가 크림반도 인근 상공에서 임무를 수행했다”고 주장했다. 글로벌 호크 RQ-4는 미군이 보유한 고고도 무인정찰기다.

이처럼 러시아는 미국이 무기를 공급했고, 미국 군대가 목표를 정하고 데이터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트레이시 대사를 초치한 자리에서도 워싱턴이 러시아에 대해 혼합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실제로 갈등에 참여하고 있다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지난 5일 푸틴 대통령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세계 주요 뉴스 통신사 대표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영토를 더 깊이 타격할 경우 재래식 미사일을 미국과 그 유럽 동맹의 타격권 내에 배치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푸틴은 전술 핵무기 배치를 연습하기 위한 훈련을 명령했으며, 얼마전 북한과 상호 방위 협정을 체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서방의 우크라이나 무장에 대한 대응으로 러시아가 북한에 무기를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서방의 개입을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다.

다만 페스코프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의 휴전 제안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덧붙였다. 지난 14일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점령지에서 군대를 철수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포기하면 즉시 휴전하고 대화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한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이 세바스토폴에 에이태큼스 5발을 발사했으며 러시아 방공망이 이 가운데 4기를 격추했으나 나머지 1기는 공중에서 집속탄 탄두가 폭발했다고 발표했다. 에이태큼스는 사거리가 300㎞ 달하는 장거리 무기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이래로 미국에 줄기차게 지원을 요구했던 무기다.

미국은 투하된 어미 폭탄이 새끼 폭탄 수백발을 지상에 흩뿌려 피해 규모를 키우는 집속탄 형태의 에이태큼스를 지난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집속탄은 비인도적 살상 무기로 평가된다.

지난달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방어 목적에만 러시아 본토를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 중거리 유도 다연장 로켓 시스템(GMLRS) 등 미국산 무기로 공격하는 것을 허용했다. 에이태큼스를 이용한 러시아 본토 공격은 여전히 허용하지 않았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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