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위한 성매매업소 촬영·녹음 적법”
대법, ‘함정단속’ 인정 … 파기 환송
“현행범 혐의 관련 영장 없이 가능”
경찰관이 손님으로 위장해 성매매를 단속하는 과정에서 영장 없이 업소를 촬영하거나 몰래 녹음하더라도 형사재판에서 적법한 증거로 쓸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성매매 알선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6일 밝혔다.
A씨는 경기 고양시에서 마사지 업소를 운영하면서 2018년 5월 17일 손님으로 위장한 남성 경찰관에게 성매매를 알선했다가 적발돼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경기 고양경찰서 생활안전과 경찰관들은 A씨의 업소에서 불법 성매매 영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위장수사 기법으로 단속에 나섰고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한 뒤 업소를 긴급 수색했다.
재판에서는 단속 경찰관이 A씨와의 대화를 몰래 녹음한 음성파일과 단속 사실을 알린 뒤에 업소 내부를 촬영한 사진, 여성 종업원의 진술서 등이 증거로 제출됐다.
쟁점은 이렇게 제출된 증거들을 쓸 수 있는지, 즉 증거능력 유무였다. 증거능력은 엄격한 증명 자료로 사용될 수 있는 법률상 자격을 뜻하며 법률에 규정돼 있다.
증거능력이 인정돼야 법정에서 증거로 쓸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그것이 혐의를 증명하는 실질적 가치가 있는지, 즉 증명력을 따지게 된다.
A씨는 혐의를 부인하며 위법한 함정수사라고 주장했으나 1심은 성매매 알선 행위를 유죄로 인정해 A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2심은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여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진술인의 기본권을 침해해 몰래 녹음했고 영장 없이 사진을 촬영하는 등 경찰관이 증거 수집 절차를 어겼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녹취 CD는 단속 경찰관이 손님으로 성매매 업소에 들어가 피고인과 나눈 대화를 비밀녹음한 것”이라며 “비밀녹음은 진술인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형사소송법이 규정한 사전고지 규정에 반하며 타인의 대화 비밀을 침해하는 것으로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단속 경찰관들은 업소 내부 수색 과정에서 수색영장을 발부받거나 압수절차를 진행하지 않았고 수사 현장에서의 사진촬영과 같은 검증에는 영장주의가 적용됨에도 영장 없이 업소시설을 촬영했다”고 지적했다.
종업원의 수사기관 진술 또한 관련된 범죄에 관한 것임에도 진술거부권이 고지되지 않은 채 진술청취가 이뤄져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2심 판단이 잘못됐다며 판결을 뒤집고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은 녹음파일에 대해서는 “영장 없이 이뤄졌다고 해서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현행범 등 관련자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더라도 통신비밀보호법이 금지하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 이상 마찬가지”라고 봤다.
그러면서 “수사기관이 적법한 절차와 방법에 따라 범죄를 수사하면서 현재 그 범행이 행해지고 있거나 행해진 직후이고, 증거보전의 필요성 및 긴급성이 있으며,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상당한(타당한) 방법으로 범행 현장에서 현행범인 등 관련자들과 수사기관의 대화를 녹음한 경우”에는 몰래 녹음이 가능하다고 기준을 제시했다.
이에 경찰관과 A씨의 대화가 공개된 장소에서 이뤄진 점, 대화 내용이 특별히 보호받아야 하는 것으로 보기도 어려운 점 등을 근거로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사진도 마찬가지였다. 대법원은 “경찰관은 피고인을 현행범으로 체포했고 그 현장인 성매매업소를 수색해 체포 원인이 되는 성매매 알선 혐의사실과 관련해 촬영을 했다”며 “형사소송법에 의해 예외적으로 영장에 의하지 않은 강제처분을 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2심이 위법하다고 판단한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성매매 범죄의 경우 미수범은 처벌받지 않으므로 종업원은 참고인일 뿐이고, 따라서 진술거부권을 알려주지 않아도 증거능력이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원심은 각 증거의 증거능력을 부정함으로써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한편 성매매 단속 촬영 문제는 계속 논란이 돼왔다. 지난해 7월에는 경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로 종업원 알몸을 찍고 이를 단속팀 단체 채팅방에 공유한 것이 인권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이 나오기도 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