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궁 진입한 볼리비아군 탱크
“쿠데타 시도” 실패
군지휘부 전격 교체
남미 볼리비아에서 군부가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해 대통령궁에 무력으로 진입하는 쿠데타 상황이 벌어졌다. 군 핵심 지도부는 무너진 조국을 찾겠다고 선언했고, 대통령은 쿠데타로 간주하면서 군지휘부를 전격 교체했다.
26일(현지시간) 오후 무장한 볼리비아 군 장병들이 탱크와 장갑차 등을 앞세운 채 수도 라파스 무리요 광장에 집결했다. 무리요 광장 앞에는 대통령궁(정부청사)과 국회, 대성당이 있다. 볼리비아 군은 청사 앞에 대오를 갖춘 채 시민들 통행을 일부 통제했고, 장갑차로 청사 건물 입구를 부쉈다.
텔레비시온 볼리비아나 등 현지 TV 방송 매체들은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생중계했다.
루이스 아르세 볼리비아 대통령은 반란을 이끄는 것으로 보이는 합참의장 후안 호세 수니가를 궁전 복도에서 맞닥뜨렸다. 볼리비아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영상에서 아르세 대통령은 “나는 너희의 대장이고, 너희에게 군대를 철수하라고 명령한다. 나는 이 반란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수니가는 정부 건물에 들어가기 전 광장에서 기자들에게 “곧 새로운 내각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더 이상 이렇게 지낼 수 없다”고 말했다. 수니가는 지금은 아르세를 최고 지휘관으로 인정한다고 말했다.
수니가는 명확히 쿠데타를 이끄는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군대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우리의 정치적 수감자들을 자유롭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르세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규정에서 벗어난 군대 배치가 이뤄졌다”며 “민주주의는 존중받아야 한다”고 적었다.
아르세 대통령은 긴급 대국민 연설에서 “볼리비아가 군의 쿠데타 시도에 직면했다”며 “국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저와 내각 구성원은 이곳에 굳건히 서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군 지휘부(3명)를 즉각 교체했다.
새로 임명된 육군 총장 조세 윌슨 산체스는 “동원된 모든 이들은 부대로 돌아가라”면서 “아무도 우리가 거리에서 보고 있는 이미지를 원하지 않는다”고 명령했다.
그러자 군대와 장갑차는 볼리비아 대통령궁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군부 진입당시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 역시 엑스에 “쿠데타가 진행 중”이라고 썼다.
수니가 장군은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모랄레스 전 대통령을 겨냥, 최근 민감한 정치적 언사를 몇 차례 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내년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로 하고 있다.
수니가 장군은 현지 취재진에 “우리는 군을 향한 (모랄레스의) 모욕적 언행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며, 군은 무너진 조국을 바로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모랄레스 전 대통령의 어떤 언급에 대해 군에서 불만을 품고 있는지 등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고 AP는 전했다.
수니가 장군은 최근에도 “모랄레스는 다시 대통령이 될 수 없다”거나 “군대는 국민의 무장한 날개인 만큼, 모랄레스를 막기 위한 적법한 모든 도구를 사용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랄레스 측에서는 수니가 장군에 대한 고발을 준비 중이었다고 엘데베르는 보도했다.
페드로 벤하민 바르가스 의원은 전날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는 검찰에 수니가 장군을 고발할 것”이라며 “그는 군대가 정치적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헌법과 기타 관련 법령을 줄줄이 위반했다”고 성토했다.
현지에서는 수니가 장군이 아르세 현 대통령에게도 ‘팽’당할 위기에 처하자, 병력을 동원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때 ‘정치적 동맹’이었던 아르세 대통령과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지지자 간 갈등이 심화하면서 현재 완전히 갈라선 상태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