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초량지하차도 참사, 공무원 유죄
대법, 침수피해 지자체 공무원의 책임 인정
주의의무 위반과 상당인과관계 인정이 핵심
2020년 7월 부산에 내린 폭우로 침수돼 시민 3명이 숨진 초량지하차도 참사와 관련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4명의 공무원에 대해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했다. ‘충북 청주 오송 궁평2지하차도 참사’와 관련해 재판에 넘겨진 충북도·청주시 공무원들의 향후 재판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7일 오전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부산 동구 공무원 4명에 대한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다만, 부산시 전 재난대응과장과 동구 전 부구청장과 기전계 직원 2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도 확정했다. 2021년 4월 기소된지 3년 2개월 만이다.
초량지하차도 참사는 2020년 7월 23일 오후 9시28분께 부산 동구 초량제1지하차도에서 폭우에 갑자기 불어난 물로 3명이 목숨을 잃은 사고다. 당시 지하차도에 설치된 재해전광판 시스템이 고장나면서 ‘출입 금지’ 문구가 표시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지하차도에 진입한 차량 6대가 침수됐고, 시민 3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당시 안전 총괄 책임을 맡았던 부산 동구청장은 휴가 중인 상태였다. 기상특보 발령시 재난안전대책본부장 직을 대신 수행해야 했던 A부구청장은 당일 오후 5시 30분쯤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보고를 받은 뒤 6시 40분쯤 퇴근했다. 오후 8시 23분 안전도시과장으로부터 호우경보 발효 소식을 보고 받았지만 곧바로 복귀하지 않았다. 이후 참사가 벌어진 뒤 1시간 가까이 지난 10시 20분쯤 구청에 복귀했다. 휴가를 떠났던 동구청장은 사고 발생 전인 오후 8시 40분쯤 구청으로 돌아왔다.
검찰은 부산시와 동구청 관련 공무원들이 재난 상황 점검과 지하차도 교통 통제, 현장담당자 배치를 비롯한 재난대응 업무를 이행하지 않고 허위로 공문서를 작성하는 등 참사 발생에 책임이 있다고 보고 A부구청장 등을 재판에 넘겼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피고인들의 업무상 과실과 이 사건 사고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 인정 여부 △과실범의 공동정범 성립 여부 등이다.
1·2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에서는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부산 동구 부구청장 등 공무원 11명 모두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피고인별로 금고형과 징역형의 집행유예, 벌금형이 각각 선고됐다. 1심 재판부는 CC(폐쇄회로)TV 상시 모니터링 요원을 통한 실시간 상황 파악이 이뤄지지 않은 점, 지하차도 현장에 담당자가 배치되지 않은 점, 지하차도 진·출입로에서 교통통제가 진행되지 않은 점, 교통통제를 위한 유관기관 협조 요청이 이뤄지지 않은 점 등으로 사망자를 유발했다고 지적했다.
1심은 A부구청장의 책임을 인정해 금고 1년2개월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부산시 재난대응과장 B씨는 벌금 1500만원, 구청 기전계 직원 C·D씨는 각각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반면 2심에서는 1심에서 유죄의 주된 근거로 제시된 주의의무 위반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원심을 뒤집고 무죄가 선고되거나 감형됐다. 주의의무 위반을 폭넓게 인정한 1심과 달리 2심은 극히 좁게 해석했기 때문이다.
2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면서 밝힌 이유는 ‘주의의무 위반의 과실과 침수 사건의 사고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음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공무원의 과실이 없었다면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합리적으로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입증해야 한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2심 재판부는 동구청장이 구청에 복귀한 시각에 A부구청장의 직무대행 지위는 종료됐다고 봤다. 또 A부구청장이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인정되더라도 사고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B과장과 C·D씨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허위공문서를 작성한 혐의가 인정된 전 동구청 건설과 기전계 주무관 F씨는 벌금이 1심 1000만원에서 2심 1500만원으로 올랐다.
출입 통제 시스템 고장을 방치한 책임이 있는 동구청 전 기전계장 E씨는 1심에서 금고 1년을 선고받은 뒤 2심에서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전 동구청 안전도시과장 G씨는 1심(징역 1년, 집행유예 2년)보다 줄어든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전 동구청 건설과장 H씨도 금고 10월에 집행유예 2년(1심 금고 1년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받았지만 유죄가 인정됐다.
대법원도 원심의 판단에 잘못이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한편 부산 동구 지하차도 침수 사건과 관련된 상고심 재판 결과가 중요한 이유는 폭우에 따른 지하차도의 침수로 인한 인명피해와 관련해 지자체가 국가배상 판결을 받은 경우는 있었으나 공무원이 직·간접적인 사고 책임을 안고 형사처벌 대상에 오른 적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재해 관련 업무를 소홀히 한 공무원에게 업무상과실치사죄를 적용할 수 있는지와 형량에 대한 선고 판례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