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해운·조선재건 움직임…해양력 쇠퇴에 위기감 고조
미 의회, 중국 해양굴기대응전략 지침서
대통령 임명 국가해양위원회설립 촉구
미국이 중국의 해양굴기에 뒤쳐진 해운·조선산업을 다시 강화하고 해양지배력을 회복하겠다는 움직임을 분명히 하고 있어 주목된다.
지난 20일(현지시간) 한화그룹이 필라델피아에 있는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것도 미국이 자국 해운·조선을 재건하기 위해 한국 일본 등 동맹국의 투자를 유치하는 흐름 속에서 나타났다.
미 의회는 지난 4월 중국의 해양패권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 해양전략을 위한 의회지침’을 민주·공화 양당 의원들이 함께 발표했고, 미 해군은 지난달 이 지침을 채택했다. 미 의회 지침은 ‘쇠퇴하는 미국의 해양력을 되돌리기 위한 것’임을 명확히 했다.
윤희성 한국해양대 해양금융대학원장은 27일 “미 의회 지침을 보면 미국이 막강해진 중국의 해양세력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대응할 필요성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며 “자국 해운·조선산업을 단기간에 직접 강화하기 어려운 미국은 동맹국과 협력할 수밖에 없을텐데 우리는 이런 흐름을 기회요인으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자국 해운·조선산업을 강화하는 움직임은 향후 수십년간 세계 해양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이신형 서울대 교수(조선해양공학과)는 “미국은 몇 년전부터 중국에 대응한 새로운 인도·태평양전략을 채택하고 해양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분위기를 계속 만들어 왔다”며 “이런 미국의 전략변화는 향후 30~40년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중국에 현격히 뒤쳐진 미국의 해운·조선산업 현실에서 위기를 느낀다. 미국 해운업계에서 일했던 한 해운 전문가는 “미국은 해운·조선을 하지 않아도 산업에서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통제되지 않는 중국의 해양세력이 커지면서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미 의회의 해양전략지침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무역의 80%가 해운을 통해 이뤄지지만 국가 간 외항운송을 담당하는 미국 국적선대는 200척 이하, 중국 국적선대는 7000척 이상으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지난해 수주한 선박은 미국 5척, 중국 1700척이다.
의회 지침 작성에 참여한 마크 켈리 상원의원(민주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80여개에 달했던 미국 대형 조선소가 지금은 20개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미국에서 원양선박을 건조·수리할 수 있도록 해운(공급망)·조선업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투자세액 공제와 인센티브도 제안했다. 그는 ‘반도체지원법’(CHIPS Act)을 모범사례로 들었다.
의회 지침에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국가해양위원회 설립 등 해양력 강화를 위해 지금 당장 해야할 일 10가지가 담겼다. 해운·조선인력을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게 제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조선소 인력은 15만3000명, 중국은 60만명이다. 선원은 각각 1만2000명, 170만명이다.
미국 내 조선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동맹국과 협력을 확대하고 미국 시장으로 투자를 유치할 것, 미국적 선단을 늘리고 미국선박을 통한 운송능력을 확대하기 위해 평시에도 미국 정부 화물을 보장하고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다양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수립할 것도 제안했다. 미국에서 해군함정 건조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 필요성도 제기했다. 남극 북극에서 잠재적 경쟁에 대응할 계획도 촉구했다.
한화의 필리조선소 인수는 “미국의 새로운 ‘해양외교전략’에 대한 판도를 뒤집는 중요한 사건”이라고 평가한 카를로스 델 토로 미 해군 장관은 지난 2월 한국을 방문,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정기선 HD현대그룹 부회장을 각각 만나 자국 조선산업에 투자해 줄 것을 요청했다.
미국의 해운조선전문지 지캡틴은 당시 델 토로 장관의 방한에 대해 ‘미국 내 민간 및 해군 조선시설에 한국의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미국 산업 기반을 활성화하기 위해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벤처투자를 장려하는 미 국방부의 국방산업전략과도 일치한다’고 보도했다.
델 토로 장관은 지난해 9월 전 세계 조선산업 패권을 겨냥한 중국의 공세에 대응하고 미국을 포괄적인 해양강국으로 재건하기 위해 새로운 해양외교전략(Maritime Statecraft)을 제안한 바 있다. 그는 “미국이 한국 일본처럼 가까운 동맹국의 더 많은 조선소와 협력관계를 맺을 수 있는 여건이 무르익었다”고 주장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