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수출, 개발도상국 국부 원천 될까
제조업 유치 점점 어려워 … 이코노미스트지 “지난 10년 글로벌 서비스 수출 60% 증가”
제조업 유치와 발전은 개발도상국이 경제를 한단계 발돋움하는 지름길이었다. 하지만 제조강국이 되는 길은 점점 어려워졌다. 제조업은 점차 자본·기술 집약적으로 변했다. 선진국도 자체 공급망을 늘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도국의 서비스 수출이 늘고 있다. 상품이 아닌, 서비스 수출이 개도국의 새로운 국부획득 원천이 될지 관심이 쏠린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에 따르면 지난 4월 미국 뉴욕의 한 프라이드치킨 가게가 갑작스레 입소문을 탔다. 많은 이들에게 회자된 이유는 음식이 아닌 서비스였다. 이곳을 찾은 손님들은 필리핀에 있는 도우미와의 화상대화를 통해 음식값을 치렀다.
이 서비스는 미국기업과 필리핀 근로자를 연결해주는 ‘해피캐셔(Happy Cashier)’에서 제공한다. 해피캐셔 대표 장츠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운영하던 식당이 실패한 후 이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해외 근로자들이 미국 현지인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전화를 받고 보안카메라 영상을 모니터링하며 각종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이는 개발도상국의 서비스수출 증가라는 큰 흐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동안 상품수출은 익숙했다.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어 전세계 고객에게 배송한다. 하지만 국제적 연결성이 향상되면서 다양한 종류의 아웃소싱과 디지털 상거래가 훨씬 쉬워졌다. 그 결과 서비스수출은 지난 10년간 60% 증가해 2023년 7조9000억달러(전세계 GDP의 7.5%)에 달했다. 실물상품 시장은 24조달러로 훨씬 더 크지만 GDP 대비 비중은 제자리걸음이다.
이런 상황은 국부를 늘리고자 노력하는 개발도상국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싱가포르 초대총리였던 리콴유는 2005년 “산업혁명 이후 산업강국을 거치지 않고 경제대국이 된 나라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세상은 변했다. 제조업은 자본집약적이어서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서의 역할을 유지하기가 더 쉬워졌다. 지난 수년 동안 서방국가들은 자국 제조업을 부양하기 위해 산업정책과 보호주의를 수용했다. 신흥국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맞아 최선의 대응방법을 찾느라 머리를 싸매고 있다.
현재 서비스수출은 대부분 부유한 국가에서 이뤄진다. 특히 화이트칼라 전문직들이 국경을 넘어 일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은 2009년 미국을 제치고 세계최대 상품수출국이 됐지만, 미국은 여전히 중국보다 2.5배 많은 서비스를 수출하고 있다. 영국의 상품수출 순위는 세계 14위로 하락했지만 여전히 세계 2위 서비스수출국이다.
개도국, 고급서비스 수출에서 두각
하지만 개발도상국들도 해외에서 판매할 수 있는 고급서비스 유형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많은 국가들이 컴퓨터·통신 서비스, 비대면 시청각 서비스를 수출하고 있다. 불가리아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몰도바 루마니아 우크라이나의 서비스수출액은 국내총생산(GDP)의 3%를 넘는다.
인도는 이 부문에서 가장 두드러진 아시아 국가로, 수출액이 GDP의 3%에 육박한다. 인도에서 이는 상당한 규모의 산업을 의미한다. 인도의 5대 IT기업 시가총액은 약 3500억 달러에 달한다. 또 다국적기업들이 약 1600개의 글로벌역량센터(기술·연구센터)를 두고 300만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전세계 총 서비스수출 가운데 인도의 비중은 10년 전 3%에서 현재 5%로 상승했다.
회계·인적자원 등 기술이 덜 필요한 ‘비즈니스·무역 관련 서비스’도 성장하고 있는 또 다른 분야다. 에스토니아와 필리핀은 해당 수출이 GDP의 5% 이상을 차지하며 이 분야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인도와 마찬가지로 필리핀도 인건비가 저렴할 뿐 아니라 영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많다. 많은 개도국의 근로자들은 온라인을 통해 비정규직 일자리를 얻기도 한다. 업워크(Upwork)나 파이버(Fiverr)와 같은 영어권 채용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프리랜서의 2/3가 신흥경제국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리고 관광업이 있다. 많은 개도국들이 의료서비스 등 방문객을 유인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치과와 고관절 교체, 모발이식 등이 대표적인 치료 서비스다. 코스타리카와 크로아티아 몰도바는 GDP의 0.2%에서 0.5%에 달하는 의료서비스를 수출하고 있다. 아르메니아와 요르단의 의료관광 비중은 각각 GDP의 1%에 달한다. 튀르키예 이스탄불 공항에서는 새 머리카락을 심고 비닐로 감싼 뒤 본국으로 돌아가는 남성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단기적으로 서비스수출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1992년 대만 컴퓨터 제조업체인 에이서 창업자 스탠 시는 ‘스마일곡선’ 이론을 주장했다. 연구개발-제조-마케팅 3단계에서 첫번째와 세번째 단계의 부가가치가 두번째 단계의 부가가치보다 빠르게 상승해 마치 웃는 모습의 곡선이 된다는 내용이다. 제조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스마일곡선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애플이 대표적 사례다. 아이폰을 디자인하고 유통하는 애플은 직접 기기를 생산하지 않는다. 애플 시가총액은 3조달러를 넘는 반면, 아이폰의 70%를 생산하는 폭스콘의 가치는 910억달러에 불과하다. 원격근무가 늘어나면서 기업들의 아웃소싱 운영은 더욱 편해졌다.
관건은 서비스수출이 제조업과 같은 방식으로 개발도상국의 생활수준을 높일 수 있을지다. 하버드대 다니 로드릭 교수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제조업은 △기술집약적이고 △국제적으로 교역가능하며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3가지 이점을 갖고 있다. 서비스업이 앞의 두 영역에서 제조업과 격차를 좁히고 있지만 일자리 창출 측면에선 여전히 열세다.
먼저 기술성장의 경우 가난한 나라의 공장들에선 인간과 기계를 결합해 미숙련노동자를 기술 최전선에 배치한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노동생산성이 향상된다. 교역가능한 서비스업종에선 이런 방식으로 비숙련노동자를 흡수하기 어렵다.
하지만 세계은행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 동아시아를 제외한 신흥경제국 노동생산성은 제조업과 서비스업에서 거의 같은 속도로 증가했다. 신흥경제국의 서비스 부문 노동생산성은 선진국보다 더 빠르게 성장했다. 게다가 인공지능(AI)은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게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AI도구는 마케팅 문구를 작성하고 고객서비스를 제공할 때 숙련도가 낮은 지식근로자가 숙련도가 높은 근로자를 따라잡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비스 분야는 교역가능성 측면에서 제조업과의 격차를 좁혀가고 있다. 인터넷 이전에는 해외로 보낼 수 있느냐가 상품과 서비스의 주요 차이점이었다. 무역을 통해 수출업체는 훨씬 더 많은 수요층에 도달할 수 있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전세계 GDP에서 상품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정체되면서 제조강국을 노리는 후발주자들의 경쟁은 더욱 어려워졌다. 반면 서비스무역 비중은 늘고 있다. 그러나 서비스무역이 지난 10년간 성장률로 상품무역 비중의 절반에 도달하려면 최소 15년은 걸릴 전망이다.
일자리 창출은 제조업 따라잡기 버거워
일자리 창출은 가장 어려운 문제다. 프랑스 렌대학교 마르크 로티에 교수 분석에 따르면, 자동화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전세계 160개국 제조업 일자리수는 1991년 이후 안정적으로 유지돼 전체 고용의 약 14%를 차지한다.
문제는 각국이 제조업 일자리를 유치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제조업은 20세기 후반 동아시아 제조강국으로 빠르게 이전했다. 하지만 이제 그같은 속도로 동아시아를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부분적 이유는 현대식 공장 건설에 더 많은 자본과 기술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신흥시장 51개국의 노동시장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1990년 제조업 종사자가 총 인구의 18%를 넘은 국가는 16개국에 달했지만 현재는 중국과 스리랑카 대만 터키 베트남 5개국만 이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서비스업의 노동집약도는 상대적으로 낮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1990년 이후 노동자들이 농업을 떠나면서 서비스 일자리가 전세계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에서 50%로 증가했다. 하지만 신흥시장 서비스 일자리의 5~10%만 교역가능한 기술산업에 종사한다. 반면 부유한 국가들의 경우 15~20%에 달한다. 인도 IT산업의 연간 수출액은 2500억달러로, GDP의 8%에 육박한다. 제조업 수출과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10억명에 달하는 노동가능인구 중 서비스 부문이 고용한 인원은 1000만명이 채 안된다.
장기적으로는 AI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AI모델은 대면할 필요가 없는 작업에 최적화된다. 이 때문에 비즈니스 서비스 부문의 노동자들이 취약해질 수 있다. 컨설팅회사 ‘캐피털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AI로 인해 향후 10년간 인도 서비스수출 성장률이 매년 0.3~0.4%p씩 하락할 전망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통신기술 확산으로 서비스 아웃소싱이 촉진됐지만, AI라는 신기술은 시간이 지날수록 서비스 부문 일자리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