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세 딴 ‘00법’ 우후죽순…“입법 만능주의 경계해야”

2024-07-04 13:00:12 게재

정치인·연예인 이름 단 법안 앞다퉈 발의

“입법부 권위 약화시키는 계기될 수도”

오세훈법·김영란법은 사회적 공감 얻어

국회의안처리시스템에 따르면 22대 국회가 개원한 후 지난 5월 30일부터 7월 3일(오후 5시 기준)까지 1359건이 발의돼 계류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 등 108명이 참여한 국회법 일부개정안(7월 3일)이 있다. 국회의원이 국회에 출석한 국무위원·증인이 선서·증언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협박하거나 퇴장, 사죄를 강요할 경우 형사처벌 할 수 있도록 명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법사위서 논쟁하는 국민의힘과 민주당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청래 위원장(왼쪽)과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가운데), 더불어민주당 김승원 간사가 25일 오전 국회에서 ‘공영방송지배구조 개선법’(방송3법)을 상정해 심의하는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논쟁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국민의힘은 이 법안 발의에 앞서 ‘정청래 방지법’을 발의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국회법사위원장인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6월 21일 진행된 ‘채 상병 특검법’ 입법청문회에서 증인들의 선서·증언 거부 등을 들어 퇴장을 명한 것을 지목한 것이다. 이에 앞서 민주당은 같은 사안에서 증언 등을 거부한 증인들에 대한 법적 규제를 강화한 ‘국회증언감정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전 해병 제1사단장이던 ‘임성근 방지법’이란 이름을 붙였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정청래 방지법’에 대해 “실상은 상임위 방해법”이라고 반발했다.

지난 총선부터 22대 국회 개원까지 정국의 핵으로 자리잡고 있는 ‘채 상병 사망 사건’을 둘러싼 공방의 연속이다. ‘채 상병’ 사건 자체가 야당에선 대통령실의 외압·진실 은폐를, 여당은 ‘야권의 과도한 정치 공세’를 상징한다고 각각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채 상병 사건과 연루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겨냥한 법안도 있다. 위성락 민주당 의원은 3일 특임공관장 임용 목적을 명확히 하고 자격 심사를 강화하는 내용의 외무공무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호주 대사에 임명되면서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 규명을 막기 위해 수사 피의자를 도피시킨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 바 있다.

특임공관장 임명에 앞서 전문성을 따지고 직위해제 대상인 사람,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출국이 금지된 사람의 경우 공관장 자격심사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출국이 금지되거나 헌법이나 국가보안법, 공직자윤리법을 위반한 혐의로 수사받고 있는 사람은 특임공관장으로 명할 수 없도록 하는 외무공무원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런종섭 방지법’이라는 별칭을 달았다.

장경태 민주당 의원은 2일 탄핵대상자에 대한 탄핵안 의결 전 자진 사퇴를 방지하기 위한 ‘김홍일 방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김홍일 방통위원장은 이날 탄핵소추안 상정에 앞서 오전에 자진 사의를 표했고, 윤 대통령은 이를 곧바로 재가했다. 사퇴를 통해 권한 행사 정지를 피하기 위한 목적이란 것이 중론이다.

김 의원은 △탄핵소추안이 발의됐을 때 국회의장은 지체 없이 탄핵소추안 정본을 법제사법위원장에게 송달하고, 그 등본을 소추대상자와 그 소속기관의 장에게 송달하도록 하고 △탄핵소추안이 송달됐을 때에 임명권자가 소추대상자의 사직원을 접수하거나 소추대상자를 해임할 수 없도록 했다.

연예인 이름을 빌린 법안도 등장했다. 양부남 민주당 의원은 수사기관이 수사정보를 흘리는 피의사실공표에 제동을 거는 피의사실공표금지법을 발의하면서 ‘이선균 방지법’으로 설명했다.

양 의원은 검찰, 경찰, 공수처 등 각 수사기관이 형법을 위반해 피의사실공표의 예외사유를 행정규칙 등으로 정하는 하위법령 자체를 효력이 없게 만들어, 현재 각 수사기관이 자체적으로 정한 예외사유를 통해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양 의원은 공개범위를 넘어선 수사내용과 개인 사생활이 무차별 유포돼 심각한 인권침해를 겪은 이선균 배우와 같은 희생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21대 국회에서는 양육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부모는 사망한 자녀의 상속을 받을 수 없게 한 ‘구하라법’이 관심을 끌기도 했다. 지난 2019년 사망한 가수 구하라 씨의 친모가 20년간 인연을 끊고 살다 딸이 사망하자 돌연 유산을 요구하면서 상속권을 규정한 민법 제1004조가 논쟁의 중심에 섰다. 2020년 국회에서는 상속 결격 사유에 ‘직계존속 또는 직계비속에 대한 보호 내지 부양 의무를 현저히 해태한 자’를 추가하는 민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음주 사고로 구속된 가수 김호중씨의 이름을 딴 법안도 있다. 민형배 민주당 의원은 지난 6월 10일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음주 단속을 위한 경찰의 호흡조사가 시작되기 직전 그 측정을 곤란하게 할 목적으로 술 또는 의약품 등을 먹거나 사용한 사람은 5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신영대 민주당 의원도 같은달 18일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에 음주 측정 전 추가 음주 행위를 명확히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2년 이상 5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상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적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24일 페이스북에 “당 대표가 되면 즉각 야당과 협의해 ‘김호중 방지법’을 논의하고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유명세에 기댄 입법 추진을 두고 국민적 관심도를 끄는 요인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실현가능성 등을 신중하게 따져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상징성 등을 고려해 특정인의 이름을 딴 법안을 내놓고 있는데 자칫 법의 남발이나 입법 만능주의로 흘러갈 수도 있다”면서 “조정이나 설득은 시도하지 않고 유명세에 기대는 형식에 치중하면 국회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이어 “피해자의 이름를 딴 법안 등은 제 2, 3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실현가능성이나 국회의 역할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정인의 이름으로 출발해 사회적 공감을 얻은 법안을 위협하는 시도도 있다. 2002년 차떼기 사건 이후 당시 오세훈 한나라당 의원이 정당법·정치자금법·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자리잡은 ‘오세훈법’은 정치개혁의 진전을 가져온 법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22대 국회 개원을 전후해 이재명 민주당 전 대표, 한동훈 국민의힘 전 비대위원장 등이 지구당 부활을 주장하면서 오세훈법 도입 취지와 맞서는 양상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와 관련 SNS에 올린 글에서 “지구당을 만들면 당 대표가 당을 장악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게 국민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나”라며 “극단적 생각을 가진 소수가 상식적인 다수를 지배하는 가장 우려스러운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와 관련해서 국민권익위가 “대통령과 직무 관련성이 없기 때문에 신고 대상이 아니고, 직무 관련성이 있더라도 외국인이 건넨 선물은 국가 소유의 대통령기록물로 분류되기 때문에 신고 의무가 없다”고 밝힌 내용은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금지법의 근간을 위협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명환 기자 m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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