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직원 성추행’ 조합원 제명 처분 “정당”
대법, 파기 환송 … “조합 신용 잃게 한 행위에 해당”
여직원을 여러 차례 성추행한 혐의로 유죄를 받은 전 농협 조합장을 제명한 조합의 처분은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는 ‘제명 사유가 아니다’는 2심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A씨가 B 농협을 상대로 낸 조합원 제명 무효 확인 등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5일 밝혔다.
A씨는 2010년부터 2019년까지 B 농협의 조합장으로 근무했다. 그는 재직 중 조합장의 지위를 이용해 여직원을 추행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2021년 8월 판결이 확정됐다.
이에 B 농협은 다음 해 1월 A씨의 행위가 조합 정관에서 정하고 있는 제명 사유인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조합에 손실을 끼치거나 조합의 신용을 잃게 한 경우’에 해당한다며 제명을 결의했다.
A씨는 제명 의결에 절차적·실체적 하자가 있어 무효라며 소송을 냈다.
쟁점은 조합의 정관에서 규정하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조합에 손실을 끼치거나 조합의 신용을 잃게 한 경우’를 근거로 성추행 혐의로 처벌받은 조합원을 제명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A씨는 재판에서 해당 정관 조항이 경제적 손실에 관한 규정으로, 이를 이유로 조합원을 해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1심과 2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조합 측이 승소했지만, 2심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2심은 A씨가 성추행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은 것이 비위 행위에 해당하지만 정관에는 해당 사유로 조합원을 제명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원고가 관련 형사사건으로 처벌받았다고 하더라도 피고 조합에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거나 피고 조합의 신용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므로, 원고에게 이같은 제명사유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해당 정관 조항이 ‘조합의 신용을 잃게 한 경우’를 제명사유로 정하였을 뿐 이를 ‘경제적 신용’으로 한정하지 않고 있다고 판단해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피고(조합)의 존립 목적은 경제적 이익이나 활동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문화적 영역을 포함한 조합원들의 지위 향상에 있다”며 “조합의 존립 및 유지에 필수적인 사항을 이행하지 않은 행위뿐만 아니라 위와 같은 목적에 저해되는 행위도 제명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전제했다.
또한 “대표자의 행동에 대한 윤리적 평가는 단체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직결된다”며 “사건 경과가 일간지의 피고(조합)의 명칭과 함께 보도됐고 피고는 원고의 1심 법정구속 및 조합장직 사임으로 보궐선거를 진행해야 했는데, 이는 피고의 명예를 실추시킬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조합의 신용을 잃게 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상 행위는 현직 조합장의 부하 직원에 대한 성범죄 행위로 죄질이 불량하고 피고(조합)의 업무 처리 등에 대한 불신을 초래해 사회적 평가와 신용을 현저하게 저하한다”며 “이를 이유로 한 제명결의에 재량의 범위를 넘어서는 중대한 실체적 하자가 있다고 하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