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혁명, 생산성향상 현실화는 아직
기업들의 AI 기술 채택 저조 … 이코노미스트지 “AI기술, 실물경제에 거의 영향 미치지 않아”
알파벳과 아마존 애플 메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의 5개 대형 기술기업들은 올해 인공지능(AI) 관련 하드웨어와 연구개발(R&D)에 약 4000억달러를 지출할 계획이다.
이들 기업의 본사가 있는 세계 기술자본의 중심지 샌프란시스코에서는 AI가 세계경제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AI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모든 기업이 AI 기술을 구매해 필요에 맞게 활용하고 그 결과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지난 한해 동안 5대 기술대기업의 시장가치에 2조달러 이상을 보탰다. 사실상 연매출 3000억~4000억달러를 예상하는 것과 같다. 이는 애플의 연매출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하지만 현재 거대 기술기업들은 그같은 결과와는 거리가 멀다. 낙관적인 분석가들조차 올해 MS의 AI 관련 매출을 100억달러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한가지 문제는 채택률이다. 컨설팅업체인 맥킨지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2/3가 회사에서 AI 기술을 ‘정기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전년 대비 거의 2배에 달하는 수치다.
MS와 링크드인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지식근로자’(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사무직종)의 75%가 이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하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구글에서 무언가를 검색하거나 스포티파이에서 노래를 고를 때 AI를 사용한다. 사람들은 이미 AI 세상에 살고 있는 셈이다.
사업과 AI 통합은 여전히 틈새시장
하지만 비즈니스 프로세스에 AI를 통합하는 것은 여전히 틈새시장이다. 공식통계기관인 미국인구조사국 조사에 따르면 ‘지난 2주 동안 AI를 사용’한 기업은 5%에 불과했다. ‘향후 6개월 동안 AI를 사용하겠다’고 답한 응답도 6%대에 머물렀다. 샌프란시스코의 많은 기술자들도 챗GPT의 최고버전을 사용하기 위해 한달 20달러를 지불하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상황이다.
다른 나라의 사정도 비슷하다. 캐나다 공식통계에 따르면 지난 12개월 동안 캐나다 기업의 6%만 상품제작과 서비스제공에 AI를 사용했다고 답했다. 지난 3월 영국 설문조사에서는 전체 기업의 20%가 AI를 사용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채택속도는 제자리걸음이다. 지난해 9월 같은 조사에서도 20% 채택률이 나왔다.
데이터 보안, 편향된 알고리즘, 비상식적 환영 생성 등에 대한 우려로 AI 도입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패스트푸드 체인점인 맥도날드는 AI를 사용해 고객의 드라이브스루 주문을 받는 시범서비스를 시작했으나 최근 한 지점 청구서에 222달러 상당의 치킨너겟을 추가하는 등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키기 시작하자 이를 중단했다.
한 컨설턴트는 고객 중 일부가 소규모 AI프로젝트가 너무 많아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에 고통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많은 다른 기업들은 AI가 너무 빠르게 발전해 곧 구식이 될 기술에 투자하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에 대형 프로젝트를 보류하고 있다.
실험단계를 넘어선 기업들은 생성형 AI를 좁은 범위의 업무에 사용하고 있다. 고객서비스 간소화가 가장 일반적인 예다. 기업관리 플랫폼 제공기업 ‘ADP’는 생성형 AI를 활용해 소기업 기업들이 고객응대나 인사관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마케팅에 AI 기술을 활용하는 기업도 있다. 통신회사 버라이즌은 고객에게 맞춤형 요금제를 추천하기 위해, 커피체인점 스타벅스는 고객별로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AI를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인상적인 건 아니다. 골드만삭스는AI 도입에 따른 생산성 향상을 통해 수익에 가장 큰 잠재적 변화가 예상되는 기업을 추적하는 주식시장지수를 만들었다. 이 지수에는 대형식료품점 월마트, 세금신고대행 업체인 H&R블록 등의 기업이 포함돼 있다. 2022년 말 챗GPT 출시 이후 이들 기업의 주가는 전체 주식시장을 능가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투자자들은 이들 기업이 AI와 관련된 추가수익을 얻을 것이라는 전망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AI를 사용해 운영을 혁신하고 있는 일화로 자주 인용되는 사례 중 하나가 스웨덴 핀테크기업 ‘클라나’다. 이 회사는 최근 자사의 AI 비서가 700명의 정규직 고객서비스 상담원의 업무를 대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회사 대표는 AI 기술 덕분에 고용인원을 매년 1/5씩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전체 그림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클라나는 조만간 기업공개(IPO)를 희망하고 있다. AI 활용에 대한 이야기가 많을수록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 그러면 상장대박을 칠 수 있다.
컨설팅업체 CB인사이츠에 따르면 클라나 직원수는 AI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 가치는 2021년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코노미스트지는 “현재 직원을 감축하고 있는 것은 AI 기술뿐 아니라 코로나19 팬데믹 동안의 과잉고용도 한몫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식데이터에 포착되지 않는 AI 생산성
실제로 거시경제 데이터에는 AI 기술로 인한 해고가 급증했다는 징후는 없다.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는 최근 “AI가 ‘쓰나미’처럼 노동시장을 강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현재 경제선진국 대부분의 실업률은 5% 미만으로 사상최저치에 근접한 상황이다. 사무직 일자리 비중은 사상최고치에 근접했다. 임금상승률도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AI로 노동자의 협상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예상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수치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봐도 AI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는 경우라면 노동자들이 평소보다 빠르게 회사를 옮겨야 한다. 미국의 직업별 고용데이터에 따르면 화이트칼라 직종의 고용 비중은 팬데믹 이전보다 1%p 더 높다. 백오피스 지원이나 카피라이터 등 화이트칼라 일자리는 논리적 추론과 창의성을 요하는 업무에 더 능숙해지고 있는 AI의 위협에 취약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데이터는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일부 경제학자는 AI가 사람들을 일자리에서 내몰지 않고도 세계경제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본다. 대표적으로 가상비서와의 협업은 업무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다. 시카고대 앤더스 험럼 교수와 코펜하겐대 에밀리 베스터가드 교수가 덴마크 노동자 10만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챗GPT를 사용하면 업무에 소요되는 시간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답했다. 이론적으로 효율성이 크게 향상될 수 있다.
하지만 거시경제 데이터에서 생산성이 급증했다는 증거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공식수치를 사용한 최신 추정에 따르면 전세계 AI 중심지인 미국의 시간당 생산량은 2020년 이전 추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구매관리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도출된 글로벌 데이터에서도 생산성 급증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생산성이 급증하려면 기업들이 AI에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다른 기업에 판매하기 위해 AI 제품 개발에 투자하는 대기업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기업이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다. 미국 S&P500에 속하지만 기술대기업이 아닌 나머지 기업들의 자본지출은 올해 실질기준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경제 전체로 보면 거의 증가하지 않을 전망이다. 정보처리장비 및 소프트웨어에 대한 전반적인 기업투자는 실질기준으로 전년 대비 5% 증가해 장기평균을 훨씬 밑돌고 있다. 경제선진국 전반의 투자는 2010년대보다 더 느리게 증가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기업들은 AI의 진정한 잠재력에 눈을 뜨게 될 수 있다. 트랙터와 전기, 개인용컴퓨터(PC)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기술혁신은 경제전반에 확산되는 데 시간이 걸렸다. 투자자들은 빅테크의 AI 매출이 연평균 20%씩 성장한다고 가정하면서 2032년 이후 빅테크의 거의 모든 수익이 AI에서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AI 대박이 현실화되면 기술대기업뿐 아니라 AI 기술 활용기업들의 주가도 급등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AI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 빅테크기업의 주가만큼이나 설비투자 계획도 과장된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