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총선, 극우서 좌파로 급회전

2024-07-08 13:00:01 게재

결선투표서 ‘반 극우’ 좌파연대 1위 … 과반확보 정당 없어 정국 불투명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공화국 광장에 모인 시위대가 이날 발표된 총선 2차 투표 결과에 기뻐하고 있다. 이날 치러진 프랑스 총선 2차 투표에서는 좌파 연합 신민중전선(NFP)이 극우 정당을 누르고 1당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파리 AFP=연합뉴스
1차 투표에서 극우 국민연합(RN)이 1위를 차지했던 프랑스 총선의 7일(현지시간) 결선투표 결과 이번엔 좌파연합이 1위를 차지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범여권은 2위를 차지했고, RN은 3위로 전락했다.

극우세력의 의회장악 우려를 제기하면서 반극우 연대 논리를 폈던 좌파연합과 범여권의 정치적 동맹이 위력을 발휘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원내 과반을 확보한 정당이 나오지 않으면서 향후 프랑스 정국운영은 매우 복잡한 고차방정식이 될 전망이다.

총선 결선투표 결과 지지율 1위를 달리던 극우 국민연합(RN)이 3위로 밀려난 대신 극우 세력의 집권저지로 뭉친 좌파 연합 신민중전선(NFP)이 1위를 차지했다.

극좌 성향의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사회당, 공산당, 녹색당 등 프랑스 좌파 정당들은 지난달 9일 유럽의회 선거 이후 마크롱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결정하자 NFP란 동맹 세력을 만들었다. 이들은 지난달 30일 1차 투표 때까지만 해도 RN에 뒤처진 2위에 머물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결선투표에서 극적인 역전에 성공했다.

특히 1차 투표에서 극우에 밀린 좌파 연합과 범여권은 비상이 걸렸고, 이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극우 집권을 저지해야 한다는 공통의 목적을 위해 사실상 후보 단일화를 이뤘다.

르몽드 집계에 따르면 NFP에서 총 134명, 범여권에서 82명이 사퇴했다. 이를 통해 3자대결 지역구는 306곳에서 89곳으로 대폭 줄어든 대신, 양자 대결 지역구는 190곳에서 400곳이 넘게 늘어났다. 투표율도 크게 늘었다. 이날 투표율은 여론조사기관 IFOP 추정 결과 67.5%로 나타났다. 이는 2022년 총선 2차 투표율인 46.2%보다 21.3 %포인트 높은 것이며, 지난달 30일 1차 투표율인 66.7%보다도 다소 올라갔다.

정치권의 합종연횡만이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이번 총선 기간 내내 각계각층 인사들이 극우에 반대해 투표에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축구 국가대표 주장 킬리안 음바페, 유명 팝가수 아야 나카무라, 배우 마리옹 코티야르를 비롯해 프랑스 역사학자 1000명도 언론 호소문을 통해 RN 반대투표를 촉구했다. 이런 분위기가 ‘극우 돌풍’을 ‘반극우 연대 바람’으로 바꾼 것이다.

바람의 방향은 바뀌었지만 압도적 승리는 아무도 쟁취하지 못했다.

출구조사 결과 좌파연합 신민중전선(NFP)은 전체 의석 577석 가운데 178~205석, 마크롱 대통령의 범여권은 157~174석, 극우 RN은 113~148석을 얻을 걸로 전망됐다. 과반인 289석에 아무도 미치지 못한 ‘헝 의회’(Hung Parliament)가 다시 출연하게 될 전망이다. 헝 의회란 의원내각제 정부 체제에서 의회 내 과반을 차지한 정당이 없어 불안하게 매달려 있는 상태(Hung)의 의회를 뜻한다. 2022년 대선 직후 치러진 총선에서도 마크롱의 범여권은 20년만에 처음으로 과반에 미달한 245석을 얻었다.

절대 과반을 확보한 정당이 안 나오면서 당장 총리 인선 절차부터 안갯속이다.

프랑스에서는 대통령이 총리를 임명하고 총리는 함께 일할 장관들을 대통령에게 제청해 내각을 꾸린다. 문제는 하원에서 총리를 비롯한 내각 불신임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집권 여당이 다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통령이 마음대로 내 사람을 총리에 앉혔다간 곧바로 의회에서 거부당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랑스에서는 대통령이 통상 하원 다수당의 지지를 얻는 인물을 총리로 임명하는 관례가 있다.

현재 1당이 될 것으로 전망되는 NFP 역시 마크롱 대통령이 자신들에게 정부 구성권을 줘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좌파 연합 내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장뤼크 멜랑숑 대표는 출구조사 결과 발표 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NFP에 국가 운영을 요청할 의무가 있다”며 “좌파 연합은 집권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NFP 소속 사회당의 올리비에 포르 대표도 “NFP가 역사의 새로운 장을 책임져야 한다”며 “우리는 반대되는 세력과의 연합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NFP 중심의 정부 구성에 나설 뜻을 밝혔다. 이에 반해 마크롱 대통령은 극좌 정당 LFI에는 정부 운영을 맡기지 않겠다는 입장을 누차 밝힌 터라 향후 총리 임명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마크롱 대통령이 야권의 반발을 무릅쓰고 원내 2당이 된 범여권 내에서 총리를 임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파 공화당과 세를 규합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럴 경우 NFP와 RN 진영에서 바로 불신임안을 통과시킬 수 있어 위험 요소가 크다.

엘리제궁은 이날 정부구성과 관련 “마크롱 대통령은 의회에서 전체 그림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필요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며 “마크롱 대통령은 국민의 선택을 존중할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밝힌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반면 한때 차기 총리 배출이 유력시됐던 RN은 원내 3위 진영으로 밀리면서 정부 운영에 참여할 기회를 사실상 잃게 됐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정재철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