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70년대 ‘간첩단 사건’ 재심 ‘무죄’

2024-07-10 13:00:01 게재

대법 ‘유럽간첩단 사건’ 피해자 55년만에 무죄 확정

광주고법 ‘또다른’ 거문도 간첩단 사건 재심서 무죄

불법구금, 고문·협박에 의한 임의성 없는 진술 인정

법원이 1960·1970년대 ‘간첩단 사건’ 재심사건에서 잇따라 무죄를 선고하고 있다.

대법원은 최근 1960년대 일명 ‘유럽간첩단’ 사건 피해자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확정했으며, 광주고등법원도 ‘또다른’ 거문도 간첩단 사건 피해자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과거 억울하게 간첩 혐의로 사형당하거나 옥고를 치른 피해자들이 50여년만에 누명을 벗게 됐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지난달 13일 국가보안법 위반,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 모(82)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0일 밝혔다.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지 55년 만이다.

김씨는 당시 고려대 대학원생으로 1966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유학하던 중 북한 공작원과 접선해 지령 서신을 전달하고 사회주의 관련 서적을 읽은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김씨가 고 박노수 교수에게 포섭됐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1969년 재판에서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판결에 불복했으나 2심과 대법원도 같은 형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고 박 교수와 고 김규남 의원은 1970년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고 1972년 7월 집행됐다.

박 교수와 김 의원의 유족은 재심을 청구해 2013년 서울고법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법원은 “(두 사람이) 수사기관에 영장 없이 체포돼 조사받으면서 고문과 협박에 의해 임의성 없는 진술을 했다”고 인정했다. 이들에 대한 재심은 2015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김씨는 2022년 재심을 청구했다. 서울고법은 지난 2월 진술이 임의성 없는 상태에서 이뤄졌고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한다고 판시해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김씨가 중앙정보부에 의해 연행된 뒤 폭행과 물고문, 전기고문을 비롯해 혹독한 강제 수사를 받다가 못 이겨 진술했으며 불법으로 구금·연행됐다고 판결문에 적시했다.

검찰은 재심에서 김씨가 여전히 일부는 유죄라며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구형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증거는 적법한 증거로 인정할 수 없고, 남은 증거들만으로 김씨에게 국가의 존립·안전 등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가능성이나 그러겠다는 인식이 있었음을 인정할 수 없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검찰이 불복했으나 대법원도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에 잘못이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이와 별도로 광주고법도 9일 간첩단 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광주고법 형사2부(이의영 고법판사)는 9일 거문도 간첩 사건 70대 피고인 A씨와 B씨, 사망 피고인 2명에 대한 재심 선고공판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피고인 4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사건은 1976년 김재민씨 일가 거문도 간첩 사건 3년 전에 발생한 ‘또 다른’ 거문도 고정간첩 사건이다.

A씨는 1972년 17세의 나이에, 북에서 내려온 삼촌의 꼬임에 속아 납북됐다가 돌아왔다.

검찰은 A씨의 납북을 빌미로 그가 공작금 등과 함께 세뇌교육과 지령을 받고 내려와 아버지와 어머니, 친척 B씨를 포섭해 고정간첩으로 활동했다고 보고 기소했다.

A씨 등은 1973년 체포됐는데, 피고인 4명 모두 구속영장 발부 없이 장기간 구금 수사를 받으며 고문·가혹 행위로 인한 자백을 근거로 송치·기소돼 유죄를 선고받았다.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A씨는 항소심에서 징역 15년에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았고, 나머지 피고인 3명도 징역 3년 6개월~5년을 확정판결 받았다.

A씨 등은 김재민씨 유족 등이 ‘거문도 간첩단’ 사건(1976년)의 재심 결정을 2022년 받아내자, 재심을 신청했다.

김재민씨 간첩단 사건도 A씨 포섭 등에 관여한 북측 인사들이 연관된 사건으로 알려졌다.

A씨측은 “삼촌의 꼬드김에 납북된 사실은 있으나, 지령받고 간첩 활동하고 추가 간첩을 포섭했다는 공소사실은 모두 허위로 조작됐다”며 “특히 수사 과정에서 장기간 불법 구금과 전기고문·몽둥이질·가혹행위로 거짓 자백을 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불법 구금과 고문·가혹행위로 진술을 받은 사실이 인정된다”며 “검찰·재판 과정도 불법 수사로 인한 심리·정신적 압박이 이어진 상태였다”고 무죄로 판단했다.

이번 재심 결과에 검찰의 대응이 주목된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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