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위험요소 이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2024-07-12 13:00:37 게재

경기도 ‘마을위기 대응 시범사업’ 수행

남양주 진건읍 주민주도 대응체계 마련

“진건읍에 25년 살았는데 우리 마을에 경사로, 좁은 뒷골목 등 위험요소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11일 오후 5시 경기 남양주 진건읍 주민자치회에서 만난 송기석 주민자치분과장은 “은퇴 전에는 직장과 집만 오갔는데 은퇴 후 마을 이곳저곳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이번에 ‘마을안전지도’를 만들면서 안 가본 곳이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6월 24일 남양주시 진건읍 주민들이 노후주택 화재 대응 훈련을 마치고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 진건읍 주민자치회 제공

남양주시 진건읍 주민자치회는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가 진행한 ‘마을위기 대응 시범사업’에 참여해 ‘마을구호자원 발굴 및 마을안전지도 제작’과 ‘화재대응 액션플랜 수립 및 대응훈련’ 두 과제를 수행했다. ‘마을위기 대응 시범사업’은 갈수록 일상화되고 있는 재난과 사회적 참사를 마을공동체 중심으로 예방·대응할 수 있는 협력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사업이다.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주민자치회가 제작해 부탁한 ‘진건읍 주택 골목 화재 대피 경로’ 안내문. 곽태영 기자

송기석 분과장은 마을안전지도 제작을 책임졌다. 그는 주민들과 약 한달에 걸쳐 마을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교통사고, 폭설, 수해, 폭염, 우범지대 등 위험요소를 점검했다. 현장조사 사진과 위험요소 점검내용을 일일이 기록하고 교통사고 수해 우범 화재 등 유형별로 분류했다. 참여자들과 회의를 거쳐 진건읍 10대 위험 관리지역과 23개 유형별 위험요소가 표시된 지도를 만들었다. 인도 단절로 보행자 교통사고가 우려되는 ‘사릉교차로(사릉역방향)’ 폭우 시 침수가 우려되는 ‘용정사거리에서 주민센터방향 저지대 골목’ 등이다. 송기석 분과장은 “침수 낙상 등이 우려되는 위험지역 표시뿐 아니라 재난재해 대비, 위급상황 시 대응방법, 긴급연락처도 담았다”며 “고생은 많았지만 살기좋은 동네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진건읍은 자연부락 중심으로 형성된 도농복합마을이다. 진건읍 내 6개 리 가운데 1곳에는 다산신도시가 조성됐고 3기 왕숙신도시에도 3개 리가 포함되면서 인구가 줄어 현재 2만800명에 불과하다. 마을인구의 24%가 65세 이상이고 지은 지 20년에서 40년 가까이 된 연립·다세대 주택이 대부분이다. 윤성희 주민자치회 사무국장은 “신도시 개발로 인구가 줄고 고령자와 노후주택이 많다보니 재해·재난에 취약한 상황”이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주민들의 요구가 모아져 이번 사업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진건읍의 가장 큰 위험요소는 ‘화재’다. 노후주택이 많은데 골목은 좁고 주차된 차량이 많아 소방차 진입이 어렵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노후주택 화재대응 실행계획을 수립하기로 했다. 화재 발생 직후 대응방법을 숙지하고 대피가 어려운 거동불편 주민, 고령자 등을 파악했다. 화재 시 긴급대피소와 마을주민 집결장소를 선정하고 안내문을 마을 곳곳에 부착했다. 남양주시 안전기획과, 남양주소방서, 의용소방대, 이장협의회 등 화재대응을 위한 민관협력체계도 구축했다. 마지막으로 대응체계가 잘 작동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지난 6월 진건초교 인근 노후주택에서 화재 가상 대응훈련을 실시했다. “불이야” 외침과 함께 119에 화재발생 신고가 접수됐고 주민들이 대피하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소방차 ‘길터주기’ 작업에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이·통장들은 노약자 장애인 등 재난약자와 함께 대피소로 이동했다. 주민자치위원들은 대피소에 도착한 주민들을 안정시키고 물품 지원, 구급대 인계작업을 수행했다. 대응훈련은 성공적이었다. 화재대응훈련을 주도한 신석희 주민자치위원은 “마을에 위험요소가 많지만 이번 사업을 통해 이웃에 누가 사는지 관심을 갖게 됐고 위기가 닥쳤을 때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 깨닫게 된 것이 가장 큰 성과”라며 “주민·단체별 역할을 잘 수행하면 위기를 이겨낼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번 시범사업 용역을 맡은 김현수 사회혁신연구소 연구실장은 “최근 화성 화재사고 등 자연·사회 재난이 빈번해지면서 소방 등 행정력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현장을 잘 아는 마을주민들의 역할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시범사업을 통해 주민주도 재난대응 사례의 도내 확산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곽태영 기자 tykwa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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