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 동반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있다”

2024-07-19 13:00:24 게재

대법, 동성동반자 권리 첫 인정 … “민법상 ‘배우자’ 해석과는 별개”

민변 “이성 사실혼 부부·동성동반자, 동일성 확인한 역사적 판결”

동성 배우자에 대해 사실혼 관계의 이성 배우자와 마찬가지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지 않은 한국에서 동성 부부의 사회보장제도상 법적 권리를 일부 인정한 첫 대법원 판결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조희대 대법원장·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18일 소성욱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료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국민건강보험법령에서 동성 동반자를 피부양자에서 배제하는 명시적 규정이 없는데도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제하는 것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이라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소씨는 동성 반려자 김용민씨와 2019년 결혼식을 올리고 이듬해 2월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인 배우자 김씨의 피부양자로 등록됐다. 하지만 그해 10월 ‘피부양자 인정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단에서 보험료를 내라는 처분을 받았다.

이에 소씨는 “실질적 혼인 관계인데도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부인하는 것은 피부양자 제도의 목적에 어긋난다”며 행정소송을 냈다.

앞서 1심은 소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2심을 심리한 서울고법은 지난해 2월 건보공단의 보험료 부과 처분이 잘못됐다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당시 법원은 소씨와 김씨가 2017년부터 동거했고 2019년에 결혼식을 올리는 등 ‘사실혼 부부’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공단이 행정 처분(피부양자 자격 인정)을 할 때 동성 부부를 배제한 것은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므로 취소해야 한다고 봤다.

이에 공단이 불복해 상고했다. 대법원 2부는 지난해 3월부터 심리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하고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대법원은 이날 “국민건강보험의 피부양자제도에 명시적으로 금지되지 않은데도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과 달리 동거·부양·협조·정조의무를 바탕으로 부부공동생활에 준할 정도의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동성 동반자를 피부양자로 인정하지 않은 처분은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조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9명은 “건보공단은 사실상 혼인 관계에 있는 (이성) 집단에 대해서는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면서, 동성 동반자 집단에는 이를 인정하지 않아 달리 취급하고 있다”며 “이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을 차별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이어 “함께 생활하고 서로 부양하는 동성 동반자의 관계가 기본적 사회보장제도인 건강보험에서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수 의견은 또 “동성 동반자는 단순히 동거하는 관계를 뛰어넘어 동거·부양·정조 의무를 바탕으로 부부 공동생활에 준할 정도의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이라며 “건보공단이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사실상 (이성)혼인관계에 있는 사람’과 차이가 없다”고 했다.

다만 재판부는 동성 동반자에 대해 민법상 ‘배우자’의 범위로 해석하는 문제는 별개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실상 혼인 관계에 있는 사람에 준해 건강보험의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문제와 민법 내지 가족법상 ‘배우자’의 범위를 해석·확정하는 문제는 충분히 다른 국면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짚었다.

이날 대법관 13명 중 4명(이동원·노태악·오석준·권영준)은 다른 의견을 냈다. 이들은 “배우자는 이성 간의 결합을 본질로 하는 혼인을 전제로 하는데 동성 간의 결합에는 혼인 관계의 실질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합리적 근거 없는 자의적 차별이라고 볼 수 없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에 대해 “행정청에 의한 차별 처우의 위법성이 보다 폭넓게 인정될 수 있다는 기존 법리를 확인했다”며 “그동안 피부양자로 인정될 수 없었던 동성 간 결합관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행복추구권 등 헌법상 기본권을 보다 충실하게 보장할 수 있게 되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대법원 판결은 이성 사실혼 부부와 동성 ㄷㆍㅡㅇ반지, 두 집단 사이에 본질적인 동일성이 존재함을 확인한 역사적인 판결”이라며 “대법원은 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라 사회보장 차원에서 보호의 대상이 돼야 할 생활공동체 개념이 확대되고 있는 점을 강조하며 이성 사실혼 관계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동성 동반자에게도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할 필요성을 인정했다”고 평가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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