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유지 건물 임차인 “무단점유자 아냐”
대법, 변상금 처분 부당 파기 환송
“소유자가 점용하고 있다고 봐야”
국유지에 지은 건물의 임차인들에게 ‘무단 점유’를 이유로 변상금을 물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신숙희 대법관)은 A씨와 주식회사 B가 국가철도공단을 상대로 낸 변상금 부과 처분 취소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철도공단은 서울 구로구의 철도 용지 중 일부를 C씨에게 2011년 3월부터 5년간 사용료를 받으며 국유재산 사용을 허가했다.
공단은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 몇 차례 갱신을 통해 2025년 12월까지 C씨에게 이 토지의 사용을 허가했다. C씨는 해당 토지에 조립식 건물을 설치해 A씨에게 세탁소로, 주식회사 B에게 사무소로 보증금과 임대료 등을 받으며 임대해줬다.
갈등은 약 10년 뒤인 2021년에 발생했다. 공단은 임차인 A씨와 B사에 “공단으로부터 사용허가를 받지 않은 무단 점유자”라며 변상금을 부과했다. 동시에 시설물에 대한 철거를 요구했다. 국유재산법에 따르면 국유 재산의 사용을 허가받은 사람은 이를 다른 사람에게 사용하도록 해서는 안 되고, 허가 없이 사용하면 ‘무단 점유’가 돼 변상금을 내야 한다.
A씨와 B사 측은 반발했다. 이들은 “임대인과 임대차계약을 맺었으므로 무단점유자가 아니다”라며 “공단 담당 공무원들이 2016년께 2차례 현장 점검을 와서 별다른 문제를 삼지 않고, 임대인에게 사용허가를 갱신해 줬다”고 주장했다.
반면 공단 측은 “국유재산법상 사용허가를 받은 자는 승인없이 임대차를 맺을 수 없다”며 “임차인 A씨와 B사에겐 해당 토지를 점유·사용할 수 있는 정당한 권한이 없다”고 반박했다.
A씨와 B사는 소송을 청구했다.
1심 재판부는 “공단이 임대인에게 사용허가를 낼 때 사용 목적만 ‘사무실 및 점포’로 제한했을 뿐 반드시 임대인 본인이 직접 사용·수익해야 한다는 조건을 부과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공단 담당 공무원들이 현장점검을 했을 때 건축물이 별도의 사업장으로 이용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인지할 수 있었을 텐데 임대인에게 사용허가 갱신 및 재사용허가를 해줬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공단의 변상금 부과 처분이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며 공단 측 승소로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국유재산법상 토지에 대한 사용허가 없이 제3자가 임의로 사용·수익하는 건 당연한 금지 사항”이라며 “공단이 별도의 조건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해서 임차인들의 사용·수익·점유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공단 공무원들이 현장 점검 당시 건축물의 임대 등 권리관계까지 확인했다는 사정은 나타나지 않는다”며 임차인들이 토지를 무단 점유한 게 맞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2심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은 “건물의 소유자가 아닌 자는 실제 그 건물을 점유·사용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부지를 점용하는 것으로 볼 수 없고 소유자가 점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이 사건 건축물은 임대인이 공단의 허가를 받아 신축한 것이고, 임차인들은 임대인에게 건축물의 일부를 임차한 것에 불과하다”며 “A씨 등 임차인들은 토지의 무단점유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법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2심)은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다시 판단하도록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