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발 해상운임 급등, 유럽 금리인하 늦출까
상품물가 영향 두고
경제학자들 갑론을박
글로벌 해상운임 급등세가 인플레이션을 밀어올려 유럽의 금리인하 행보를 늦출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시장과 투자자들은 이를 과소평가하는 상황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2일 글로벌 화물운임분석기관 ‘제네타’를 인용해 “동북아시아에서 북유럽까지 40피트 규격 컨테이너 1개를 운송하는 데 드는 비용은 지난 4월 3223달러에서 현재 8461달러(약 1200만원)으로 급등했다”고 전했다. 홍해에서 수에즈운하에 이르는 물류 요충지를 예멘 후티반군이 막아서면서다.
지난해 12월 화물운임이 오르기 시작할 때 유럽 각국 정부는 낙관적인 입장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직후처럼 소비자물가가 급등하는 일은 없다는 것. 하지만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이번주 “지정학적 갈등이 고조되면서 인플레이션이 상승할 위험이 커졌다. 조만간 에너지가격, 화물운임을 밀어올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부 경제학자들도 가세했다. 노무라투자은행은 “홍해발 긴장이 고조되고, 미국과 독일 항구에서 파업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며, 연말 성수기를 앞두고 전세계 기업들이 재고를 확충하려 달려들면서 해상운임이 하락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노무라 이코노미스트 안제이 슈체파니악은 “특히 소비자 주도 경기회복세가 뚜렷한 유로존과 영국의 경우 기업들이 해상운임 상승분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가능성이 크다”며 “화물운임이 현재 상태를 정점으로 향후 점진적으로 하락한다고 해도, 내년 말 유로존과 영국 인플레이션을 0.3~0.4%p를 올릴 수 있다”고 예상했다.
피치레이팅스 수석이코노미스트 브라이언 쿨턴도 비슷한 결과를 예상하며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 인하를 연기해야 할 리스크에 직면했지만, 투자자들은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시장의 관심은 서비스 인플레이션의 완고함이었다. 시장 참가자들은 상품 근원물가의 안정세에 크게 안도했다. 나는 그게 상당한 옥의 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일부 경제학자들은 그같은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독일계 글로벌 투자은행 베렌버그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인 홀거 슈미딩은 “화물운임은 걱정거리라기보다 약간 거슬리는 것에 불과하다”며 “제조업체들은 비용을 전가할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에 화물운임 상승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은 기껏해야 0.1~0.2%p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컨설턴트인 사이먼 매캐덤 역시 “해상운임의 인플레이션 영향력은 완고한 서비스 물가가 제기하는 위협에 비하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조업체들이 2021~2022년만큼 완벽한 조건의 가격주도권을 갖고 있다 해도, 소비자들에게 전가하는 비용은 절반에 그칠 것이다. 이는 기껏해야 물가를 0.2%p 올리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판테온 매크로이코노믹스의 컨설턴트인 클라우스 비스테센은 “의심할 바 없이 지속적으로 높은 운임은 어느 시점에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투자은행 팬뮤어 리베룸의 수석이코노미스트 사이먼 프렌치는 “상품가격이 상대적으로 약간만 올라도 중앙은행들에겐 걱정거리가 될 수 있다. 통화완화정책의 잠재적인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앙은행들은 통화완화 경로를 설정했다. 이는 상품 인플레이션이 순응적일 것이라는 가정에 입각한 것”이라며 “현재 운임 수준은 그같은 가정을 탈선한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아직 그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